'자연물 이미지'저작권 공방…"구름·물방울 사용료 내라"…'억소리' 나는 손배訴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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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내가 만든 이미지"온라인 야구게임에서 1, 2위를 다투는 ‘슬러거’가 저작권 분쟁에 빠졌다. 슬러거는 타자와 투수 등을 단순한 이미지로 만들어 공수를 교대하며 점수를 올리는 게임. 그런데 야구장 전광판 뒤편에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구름’을 둘러싸고 저작권 다툼이 치열하다. 원고 측은 게임개발업체인 와이즈캣과 이 게임을 공급받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네오위즈게임즈를 상대로 “구름 이미지를 무단 사용했다”며 1억5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게임업체 등에 수백건 소송
고소당한 700여명 "권리남용"
美선 자연물 저작권 인정 최소화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원고 A씨는 네오위즈게임즈 외에도 피죤, 한글과컴퓨터, 뽀로로 제작사 오콘·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등 20개 업체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물방울’ ‘구름’ 등 이미지 저작권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정신적 노력 산물” vs “저작권 남용” 슬러거 사건에서 A씨는 1·2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의 하나인 구름 모양이라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윤곽선, 꼬리 형태, 굴곡, 색채, 명암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창작할 수 있다”며 “정신적 노력이 부여된 저작물”이라고 설명했다.
슬러거 측은 이에 반발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A씨 측은 일반 개인과 웹디자이너 등을 상대로도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을 진행 중이다. 형사 고소를 당한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700여명이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 회원은 “형사 고소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30만~300만원 범위에서 합의했다”며 “저작권 남용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제기된 소송만도 20여건이다. 원고 A씨는 인기 만화인 ‘공포의 외인구단’ 표지를 만드는 등 만화 관련 일에만 20여년을 쏟은 전문 디자이너다. 1998년 포토샵 등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름 이미지 100여개, 물방울 이미지 300여개를 만들었다. 원고가 이 이미지를 사용한 회사나 사람들에게 경고장을 보내거나 형사 고소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자연물인 구름 물방울이 소송 쟁점
자연물을 이용한 사진 이미지 등의 작품에 저작권을 인정할 것이냐는 종종 법정 다툼이 되고 있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창작성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솔섬 사진작가 사건에서도 ‘똑같은 위치에서 사진 찍을 권리가 처음 촬영한 사람에게 있느냐’는 게 핵심 쟁점이었다”는 것. 법원은 지난달 27일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가 솔섬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더라도 보호 범위를 좁게 하고 있다. 해파리 모습을 조금씩 변형해 300여가지의 유리 조각품을 만든 작가가 비슷한 조각품을 만든 사람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사건에서 원 작가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미국 법원은 “자연에 의해 최초로 표현된 아이디어는 인류 공통의 유산”이라며 “어떤 작가도 저작권법을 이용해 다른 사람이 아이디어를 묘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