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종이책 같은 e북 만드는'북잼', "소프트웨어만 12년 개발하다 전자책 앱 창업"

"소장하고픈 전자책 만들자"…작가 아버지 영향 콘텐츠에 애착
베르베르도 감탄한 e북 디자인…'이익 공유제'로 출판사와 윈윈
“이 정도면 읽을 맛 나죠?” 조한열 북잼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태블릿PC용으로 제작한 전자책을 소개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꼽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뇌’ 등의 작품으로 인기를 얻은 그가 지난해 11월 신작 ‘제3인류’를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신작을 소개하던 그는 갑자기 태블릿PC를 들어 보이더니 “이 아름다운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 내 작품집”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책 디자인에 대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그가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책 스타트업 ‘북잼’ 덕분이었다. 애초에 전자책 출판은 하지 않으려던 베르베르도 북잼이 만든 전자책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무엇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을까. 조한열 북잼 대표(39)는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전자책 출판 방식이 대부분 글자의 나열에 불과했던 반면, 북잼의 전자책 포맷(BXP)은 종이책의 편집 디자인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소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소장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출판 시장이 미국 유럽과 달리 유독 책 디자인에 비중을 두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능도 탁월하다. 기존 전자책에서 보기 힘든 지도 배경음악 동영상 사진 등을 맥락에 맞게 제공하고 메모하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유하기도 지원한다. 조 대표가 창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인터큐비트라는 ‘온라인 콘텐츠 큐레이션(블로그 등의 온라인 콘텐츠를 선별해 보여주는 서비스)’ 업체를 세우면서다. 10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시나리오 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창업을 했으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러가지 용역을 맡았는데 그중 하나가 전자책이었다. 그는 “작은 출판사에서 전자책 용역을 의뢰해 용역비로 2000만원을 불렀는데 깜짝 놀라더라”며 “나름 금액을 낮춰 불렀다고 생각했으나 출판업계는 생각보다 더 어려운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국 조 대표는 전자책을 공짜로 만들어 주고 판매수익을 나누는 ‘이익공유제’ 방식을 제안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달 만에 만든 ‘청춘을 뒤흔든 한 줄의 공감’이라는 전자책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2위에 올랐다. 조 대표는 “불법 복제에 익숙하던 소비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전자책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회사 이름을 아예 ‘북잼’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와 만화책 ‘열혈강호’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2012년 내놓은 ‘세계문학전집’은 앱스토어에서 1위에 오르며 한 달 만에 매출 10억원을 달성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8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북잼의 성공에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기존 전자책이 서점 형식의 플랫폼 앱을 먼저 내놓고 그 안에 콘텐츠를 채워넣는 방식이었다면 북잼은 아예 단권의 책을 앱으로 만들어 파는 전략을 택했다. 조 대표는 “엄선된 콘텐츠를 완결된 형태의 앱으로 만들어 소장 가치를 높인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전자책 플랫폼은 출판사보다 플랫폼 자체의 브랜드가 강조된 반면 북잼 전자책에는 출판사 로고만 들어간다”며 “70여개의 출판사가 북잼을 선택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단권 앱으로 기반을 다진 북잼은 이제 플랫폼 업체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일단 그동안 출시했던 전자책을 테마별로 모아 전자책 마켓인 ‘클라우드 서재’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책갈피기능 등을 동기화시켜 여러 단말기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