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이야기] 잡스가 꼽은 '포스트 PC시대' 키워드는?
입력
수정
지면B7
광파리의 IT이야기 kwang82.hankyung.com/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썼던 이메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애플 ‘100인 회의’와 관련한 메일로 ‘포스트 PC 시대’를 맞아 애플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잡스의 생각이 담겨 있다. 애플이 현재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세상 뜨기 1년前 '100인 회의' 관련 메일로 '클라우드 서비스' 중요성 역설
포스트 PC 시대
디지털 자산 저장소…PC에서 클라우드로 이동
구글과의 성전
모든 분야서 구글과 경쟁…애플 제품 결합해 고객 가두자
'혁신자의 딜레마' 경고
세상을 바꿔온 애플…혁신 울타리 갇힐까 염려
애플에는 최고경영자(CEO), 간부, 평사원 중 정예요원 100명만 참여하는 ‘100인 회의’란 게 있다. 신제품을 포함해 회사의 중요한 전략에 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잡스의 메일은 이 모임에서 발언할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수신자는 ‘ET’로 돼 있다. 잡스 메일의 키워드로는 ‘포스트 PC’ ‘클라우드’ ‘구글과의 성전’ 등을 꼽을 수 있다. ‘따라잡는다’와 ‘뛰어넘는다’란 표현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잡스는 포스트 PC 시대에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본이고 구글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메일 앞부분에는 ‘2011년 전략’이 메모돼 있다. 첫 번째가 ‘포스트 PC’다. 잡스는 ‘우리(애플)가 맨먼저 포스트 PC 시대로 넘어왔다’ ‘우리 매출의 66%가 포스트 PC 제품에서 나온다’ ‘6개월 안에 아이패드 매출이 맥 매출을 추월한다’고 썼다.
‘포스트 PC’를 정의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더 많은 모바일 기기+커뮤니케이션+앱(응용 프로그램)+클라우드 서비스’. 주목할 부분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본이라고 봤다는 점이다. 모바일 기기는 더 작아지고, 얇아지고, 가벼워질 거라고 메모했다.
‘구글과의 성전(holy war)’을 예상한 대목도 흥미롭다. 잡스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그들(구글)과 경쟁하게 된다’ ‘100인 회의를 여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라고 썼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본인 포스트 PC 시대에는 구글과 경쟁할 거라고 봤다. 그래서 잡스는 2011년을 ‘클라우드의 해’라고 명명했다. 잡스는 ‘디지털 허브’란 콘셉트를 우리가 맨 먼저 만들었다’ ‘PC 허브에는 주소록, 캘린더, 사진, 음악 등 각종 디지털 자산이 모인다’ ‘이 허브가 PC에서 클라우드로 옮겨가고 있다’고 썼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포스트 PC 시대에는 ‘클라우드’가 허브가 된다고 꿰뚫어봤다. 잡스가 죽기 100여일 전에 의사의 반대를 뿌리치고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던 것도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를 직접 발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재밌는 게 하나 더 있다. 잡스는 ‘클라우드의 해’에 관한 메모 중간에 ‘애플은 낡은 패러다임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에 처해 있다 (혁신자의 딜레마)’고 썼다는 점이다. 잡스는 혁신을 주도했던 애플이 ‘혁신’의 울타리에 갇힐까 염려했다.
잡스는 이메일 중간쯤에 애플 클라우드 서비스인 ‘모바일미’(현재는 ‘아이클라우드’에 통합)에 관해 길게 메모했다. ‘구글을 따라잡고 뛰어넘는 것’이 전략이라고 썼고,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깊숙이 통합하자’는 구절도 눈에 띈다. 또 하나 중요한 메모가 있다. 맨 앞부분 ‘2011년 전략’ 개요에도 나오고 ‘모바일미’ 부분에도 나오는 게 ‘결합’이다. 잡스는 ‘애플의 모든 제품을 결합함으로써 고객들을 우리 에코시스템에 좀 더 가두자’고 썼다. 결합 매개체가 클라우드임은 물론이다.
잡스가 구글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이듬해 4월 구글 CEO로 복귀한 래리 페이지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잡스가 이메일에서 말했던 그대로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애플은 아직 이렇다 할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각종 제품을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미흡하다. 아이클라우드 5기가(GB) 저장공간은 좁고 보안 때문이라지만 쓰기도 불편하다.
구글이 ‘구글드라이브’를 중심으로 각종 서비스를 결합해 가는 게 잡스가 예상했던 모습일 수도 있다. 애플이 오는 6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무엇을 발표할지, 잡스가 염려했던 ‘혁신자의 딜레마’를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하다.
■ 클라우드(Cloud)각종 파일, 프로그램 등을 저장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의미한다. 사용자들이 각종 데이터를 이곳에 저장해 놓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기기로든 접속해 이용하게 하는 것을 ‘클라우드 서비스’라고 한다.
김광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