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옴마~ 정과장님, 사내에선 안돼요!"

외부 이메일·사이트·USB·스마트폰 카메라…
사내 '보안 강화' 백태

"개인 짐은 택배로"
외국계기업서 "해고" 통보…사무실 못 돌아가고 쫓겨나

뒤통수 따가운 보안팀
"책상 치웠냐, 서랍 잠갔냐"…죄 지은 것도 아닌데 짜증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경기 수원시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일하는 삼성전자 A대리는 수시로 자신의 갤럭시S3 스마트폰을 본다. 렌즈에 가로·세로 7㎜짜리 검은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스티커가 떨어진 스마트폰을 책상에 올려놨다가 사내 보안팀에 적발돼 벌점을 받은 후 생긴 습관이다. 퇴근 후에도 스티커를 떼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A대리는 “보안을 중시하는 회사 방침에는 동의하지만 내 스마트폰 카메라는 이제 장식품이 됐다”고 푸념했다.

‘정보’가 곧 ‘돈’인 시대다. 기업들이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신제품 정보가 새나갈 경우 엄청난 피해가 온다. 특히 올초 금융권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터지면서 기업들은 보안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보안 관련 벌점과 경고가 날아다닌다. 이번주 ‘김과장&이대리’는 보안 강화로 애환을 겪는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사원증 찾기 위해 10만원도 안 아까워

대기업 정보기술(IT) 계열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9)은 지난주 수요일 택시 회사에 10통 넘는 전화를 걸었다. 전날 저녁 회식 후 택시를 탔다가 놓고 내린 물건을 찾기 위해서다. 그가 분실한 것은 고가의 스마트폰도, 지갑도 아니다. 바로 회사 사원증. 김 과장의 회사는 올해부터 사원증을 잃어버려 재발급을 신청하는 직원에게 벌점을 주고 있다. 벌점이 쌓이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김 과장은 다행히 카드로 택시비를 계산했기 때문에 차량 번호와 택시 회사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었다. 택시 회사에 전화해 보니 “그 기사님은 오후 조라서 늦게 출근합니다”였다. 출근길 보안팀에 “사원증을 집에 놓고 와서…”라고 사정해 출입문을 통과했지만 다음날도 똑같은 수법을 쓸 수는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김 과장의 폰에 택시기사 번호가 뜬 것은 오후 7시. 택시기사는 “사원증은 갖고 있는데, 좀 멀리 있어서요. 거기까지 가려면 돈이 꽤 나오겠는데요”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10만원의 보상을 약속하고서야 김 과장은 무사히 사원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벌점 받을 것을 생각하면 싸게 막은 거죠. 사원증을 ‘개목걸이’라고 생각하고 하찮게 여겼는데 이제는 항상 목에 걸고 다녀야겠습니다.”

반출 부품은 개수까지 철저히 조사해야

대기업 계열 제조업체 S사의 윤모 대리(31·여)는 박스 5개에 나눠 담긴 샘플 부품의 숫자를 세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납품업체에 샘플 다섯 박스를 요청해 받은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일은 샘플 검사를 끝내고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연구개발(R&D) 부서에 보내는 과정에서 터졌다. 배송팀에서 “사내에서 나가는 모든 제품은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입해야 한다”며 윤 대리에게 샘플 숫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다 세냐, 그냥 다섯 박스라고 적으면 안되겠냐”며 사정했지만 “회사 규정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 대리는 결국 박스들을 손수레에 싣고 다시 사무실로 가져와 샘플 개수를 셌다.

샘플 부품 크기는 가로·세로 1㎝. 2000개가 훌쩍 넘는 샘플 숫자를 다 세고 나서야 배송할 수 있었다. 더 얄미웠던 건 배송팀에선 직접 확인하지 않고 “대리님 숫자가 맞겠죠?”라며 그냥 보내는 것이었다. “정말 눈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다른 업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는데, 이런 숫자까지 다 따져야 하는 걸까요?”

사내 메일 성능이라도 올려야 서울 광화문의 한 보험사에 근무하는 A차장은 요즘 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게 두렵다. A차장이 소속된 마케팅·홍보 부서는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신문·방송·잡지 등 언론매체에 상품 설명자료와 사진을 보내 기사화를 부탁한다.

문제는 최근 사내 보안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 이전에는 USB에 자료를 저장한다거나 사내 자료를 외부로 갖고 나가는 등에 대한 기본적인 보안 관리만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메일 계정을 모두 막았다. 회사 메일이 아닌 외부 메일을 보내고 받는 것을 모두 금지한 것이다. 대량 문서 발송과 사진 첨부가 일상인 A차장은 회사 메일 때문에 답답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단체 메일이 제대로 안 보내져 항의받는 일도 잦아졌다. “용량이 큰 사진은 발송이 안 돼 정말 미치겠습니다. 회사에 메일 용량을 늘려달라고 해도 한계가 있고. 요즘은 신상품 출시가 무섭다니까요.”

해고 당일 물품도 못 찾는 외국계 기업

외국계 금융회사의 보안 관리는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국내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차장(42)은 아직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퇴직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국내 모 은행에서 일하던 박 차장은 작년 초 외국계 금융회사에 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연봉도 높아졌다. 그러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본사에서 한국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하면서 인원 감축 대상이 된 것. 그는 어느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호출을 받았다. 상담실에서 그는 해고를 통보받았다.

앞이 깜깜했던 박 차장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사무실에서 쫓겨난 것. “개인 짐은 회사에서 정리해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한마디만 들었다. 컴퓨터 등 자신이 쓰던 물품에 다시 손도 못 대게 한 것이다. 박 차장은 “정보유출 등 사내 보안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너무 야박한 처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곱지 않은 시선 받는 보안팀

보안이 강화되면서 사내 보안팀의 힘이 세졌다. 그러나 그만큼 보안팀은 감사팀 못지않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다. H기업 보안팀의 한모 차장(43)의 주요 업무는 퇴근 후 직원들 책상에 서류가 남아있지 않은지, 책상 서랍은 잘 잠겨져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잘 정리하고 나간다고 해도 하루 4~5건의 위반 사례는 발견되기 마련이다. 한 차장은 이를 체크해 바로 윗선에 보고하고 규정을 어긴 직원들에게 사유서를 받는다. 한 차장의 레이더에 걸린 직원들은 작게는 ‘경고’, 크게는 ‘벌점’을 받게 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보안팀을 원망하는 사내 여론이 확산됐다. 사내 게시판엔 “보안팀이 검사가 된 것 마냥 취조하더라”, “실수했는데, 죄지은 것도 아니고…” 등의 사연이 여러 건 올라왔다. “안 좋은 여론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기도 하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 일인데요.”

황정수/서욱진/김은정/김동현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