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3社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경쟁, "헤비유저 부담 줄어" vs "서비스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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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동통신시장에 ‘데이터 무제한’ 시대가 열렸다. LG유플러스가 지난 2일 포문을 열었고, 짜고 친 듯 SK텔레콤과 KT가 같은날 같은 상품을 내놓았다. 당장 통신업체들이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끝내고 본격적인 요금 경쟁에 나섰다는 호평이 뒤따랐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사정이 복잡하다. 통신사들은 ‘울며 겨자 먹은’ 표정이다. 소비자가 누릴 이익도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측면이 적지 않다. 그나마 이런 이익마저도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소비자 요금부담 줄고 콘텐츠 업계에도 '희소식'
'데이터=공짜' 인식 심어…수익성 낮아져 투자 줄어
◆‘무제한’에 숨은 ‘공짜’ 통신 3사가 새로 내놓은 요금제의 핵심은 ‘데이터 무제한’이다. 휴대폰에 묻혀 사는 ‘헤비 유저(데이터 과다 사용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콘텐츠 서비스업체도 반긴다. 휴대폰 이용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면 각종 사업을 펼칠 무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 서비스를 내놓은 통신사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걱정의 핵심은 ‘무료’라는 단어로 수렴된다. 통신회사들은 ‘무제한’ 또는 ‘무한대’라고 썼지만 소비자는 ‘공짜’라고 읽는 까닭이다.
정보기술(IT) 시장에서 ‘공짜’는 일종의 금기어이자 주홍글씨다. 일단 무료로 낙인 찍힌 콘텐츠와 서비스의 앞날은 예외 없이 어 두웠다. 통신시장이 ‘무제한 축제’를 벌이는 동안 증권시장이 냉랭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무제한 요금제가 발표된 2일 LG유플러스의 주가는 4.7% 급락했고 SK텔레콤도 4.6% 추락했다.
◆실속은 없고 타격은 크고
요금을 깎아주면 통신사는 그만큼 손해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무제한 요금제 출시로 연간 1500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요금제를 계기로 통신사를 바꾸는 이용자가 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통신사들이 똑같은 무기로 경쟁하게 되면 허사다. 한국의 휴대폰 보급률은 110% 수준. 이미 포화상태다. ‘제로섬 게임’으로 바뀐 통신판에서 혼자 잘나가는 건 극히 어렵다.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데이터 사용을 억제하던 족쇄가 느슨해질수록 스트리밍 등 데이터를 왕창 잡아먹는 콘텐츠 서비스업체가 성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데이터 사용량이 느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통신사들의 성장동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데이터 중심으로 요금제를 바꿔야만 다양한 수익사업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음성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고 데이터는 ‘별책부록’처럼 따라오는 구조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이런 청사진은 백지로 되돌아갔다.
통신사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추가 투자도 더뎌지게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 5세대(5G) 서비스로의 이동이 늦어지고 이용자들이 통신 장애를 겪을 우려도 있다. 아직은 안전장치가 겹겹이다. 무늬는 ‘무제한’이지만 하루 2GB 이상 데이터를 사용하면 속도가 뚝 떨어지는 제어장치가 마련돼 있다. 무제한 요금제가 목표로 삼는 이용자도 일부분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새 요금제로 갈아타는 헤비 유저 비율은 대략 3~5%, 많아도 10%에 못 미칠 것”이라며 “2G와 3G용으로 사용하던 통신망도 넉넉해 당장 통신장애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걱정은 지금부터다. 통신업체 고위 관계자는 “통신 3사가 무작정 ‘공짜’ 경쟁으로 치달을 경우 결국엔 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