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극심한 가뭄…와인산업·농업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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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가뭄 이어져“워터 플리즈(물 좀 주세요).”
미국 과일·채소 절반 생산…47조 규모 지역경제 휘청
기업들도 물 찾아 '엑소더스'
AT&T·허쉬 공장이전 검토…셰일가스 생산도 차질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 식당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다. 미국 최대 농산물 생산지 캘리포니아주가 3년째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손님에게 물을 먼저 내어주는 식당은 거의 사라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12월부터 올 2월 사이 강수량이 평년의 20%에도 못 미치면서 캘리포니아 농·축산업은 물론 지역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는 3개월뿐인 우기(12~2월)에 빗물을 모아 1년간 사용한다. 하지만 올해 우기 강수량은 예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2월 캘리포니아주는 초유의 물 부족 사태를 맞아 가뭄 경보를 내리고 주민에게 물 사용을 20%씩 줄일 것을 권고했다. 건조한 날씨 탓에 산불도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3개월간 발생한 산불은 작년 같은 기간의 세 배인 800건에 달했다.
◆와인 등 450억弗 농·축산업 직격탄 극심한 가뭄 탓에 연 450억달러(약 47조4000억원) 규모의 캘리포니아주 농·축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과일과 견과, 채소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와인과 낙농도 생산량 기준 미국 내 1위다.
이 지역에선 수자원의 80%를 농업에서 소비한다. 캘리포니아 최대 농업지역인 프레즈노 카운티에서 가뭄으로 인한 휴경지(800~1200㎢) 면적은 서울시 면적(605㎢)을 웃돈다.
미국 최대 와인 생산지 나파밸리도 타격을 입었다. 냇 디부두오 포도농장주연합회장은 “비가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도 채 내리지 않았다”며 “가뭄이 심해질 여름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목장주들은 가축을 내다팔고 있다. 풀이 모자라 암컷의 젖이 나오지 않으면서 새끼를 키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국토의 54.2%가 가뭄에 시달리면서 식탁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올 들어 4% 오른 소고기값은 더 치솟을 전망이다. 소 사육 마릿수는 1950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치즈, 우유 등 유제품의 연쇄 인상이 불가피하다. 일자리도 사라질 전망이다. 2009년에도 캘리포니아주는 가뭄으로 인해 3억4000만달러(약 3570억원)의 손실을 입고, 1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시민단체 “유정 개발 중단하라” 기업도 비상이 걸렸다. 수자원 확보는 공장 가동에 1순위 조건으로 꼽힌다. 통신업체 AT&T와 초콜릿 생산업체 허쉬는 가뭄 탓에 캘리포니아 공장의 이전을 검토 중이다.
허쉬는 자체 기술을 개발해 공장에서의 연간 물 소비량을 2009년 대비 3분의 1 이하로 줄였다. AT&T의 존 슐츠 부회장 보좌역은 “수자원 문제에 대비하지 않으면 기업 운영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공장 위치를 선택할 때 물이 새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극심한 가뭄은 미국 셰일 붐에도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셰일가스 추출 등을 위해 유정을 뚫을 때 수압파쇄 방식을 쓴다. 이때 유정 하나당 750만L의 물이 필요하다.
일부 시민단체가 “정유회사는 가뭄 때만이라도 유정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캘리포니아주는 가뭄 해법으로 인근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하는 ‘담수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17개 담수화 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거나 검토되고 있다. 이 가운데 10억달러 규모의 샌디에이고 인근 칼스배드공장이 2016년 문을 연다. 이 공장의 하루 생산량은 주민 30만명의 하루 사용량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미국 내 가뭄 피해 규모는 홍수나 허리케인보다 크다. 미국에서 한 해 허리케인과 홍수로 인한 평균 피해액은 각각 48억달러, 24억달러. 가뭄 피해액은 평균 60억달러 이상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