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박 뮤지컬
입력
수정
지면A39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국내 최초 뮤지컬 공연작으로는 조지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를 꼽는다. 거슈윈의 대표적 멜로디 ‘서머 타임’ 노래가 담겨 있는 뮤지컬이다. 1962년 새로 완공된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됐다. 극형식과 장르에선 지금 뮤지컬과는 천양지차가 나지만 그땐 굉장히 신선한 무대였다.
그해 9월에는 전문적인 뮤지컬 단체로 예그린악단이 출범했다. 창작 뮤지컬 제작을 목표로 내세운 악단이었다. 이 악단이 만든 작품이 히트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다. 배비장전을 각색한 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10월 300만원의 제작비와 출연자 300명이라는 무대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7회 공연에 1만6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노래 발성을 정확히 전달하도록 한 예그린조 창법 개발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중요하다는걸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77년 공연된 ‘빠담빠담빠담’이 인기 작품이었다. 당시 예술성과 상업성 논쟁을 불러일으킨 창작물이었다. 80년대 들어선 오히려 창작극보다 해외 뮤지컬을 도입해 대박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라이선스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에비타’ ‘아가씨와 건달들’이 이런 작품들이다.
90년대 들어선 ‘캣츠’와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등 대형 기획 공연 작품들이 히트를 쳤다. 특히 1996년 세계저작권협약인 베른협약 가입 후 이런 대형 뮤지컬 작품들이 국내에 쉽게 들어왔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0년에 7개월간 공연되면서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뮤지컬이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 뮤지컬에서 대박이 난 것도 많다. 1995년 공연된 ‘명성황후’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될 만큼 공전의 히트를 쳤다. 번안 작품 ‘지하철1호선’도 독일에서 성공적 공연을 가졌다. ‘광화문 연가’나 ‘해를 품은 달’도 꽤 관객이 많이 모여든 작품이다. 하지만 최근 뮤지컬에선 음악보다 배우 캐스팅이 흥행의 관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CJ가 투자한 뮤지컬 ‘킹키부츠’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절찬리에 장기 상연 중이라고 한다. 한국 자본이 브로드웨이에 직접 투자한 작품이다. 한국 공연판권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을 입도선매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정작 뮤지컬 한류를 위해선 자본 투자를 넘어 글로벌 제작환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할 것 같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