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생태계'가 키운 히든챔피언] 개발비 3억 지원·6개월 협업…OLED 불량 판별기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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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G디스플레이 협력사 선익시스템“이거 다 갖다 버려.”
몇 군데 포인트 검사해선 불량 제품 완전히 못 막아…전면 검사는 비용이 문제
신기술 장비 공모제 활용…선익시스템 개발 지원…내년부터 양산공정에 투입
2012년 9월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만들던 이종명 LG디스플레이 책임연구원은 10여장의 아까운 패널을 모두 버려야 했다. 유기화합물을 유리기판에 얇게 입히는 증착 과정에서 발생한 불량 때문이었다. 수십 차례도 더 실패를 거듭했지만 딱히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존 LCD(액정표시장치)에 비해 낮은 OLED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였다. 그러던 차에 협력사로 OLED 장비를 생산하는 선익시스템의 최창식 수석연구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며칠 뒤 최 수석연구원이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기존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패널의 불량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연구원은 직감적으로 “개발만 되면 대박 기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LG디스플레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과감하게 지원을 결정했다. 선도기술에 적극 투자하자는 내부 방침 덕분에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선익시스템에 자금과 인력 지원이 뒤따랐다. 선익시스템은 밤샘 작업을 하며 개발에 몰두했고 결국 6개월 만인 작년 말 세계 1위 OLED 장비업체인 일본 도키도 해내지 못한 OLED 패널 검사장비 기술을 확보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검사장비 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해 낸 것이었다. LG디스플레이는 내년부터 이 기술을 OLED 패널 양산공정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는 라인당 연간 50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년간 LG디스플레이에 독점 공급하는 선익시스템은 최근 부진한 실적을 타개할 신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LGD의 과감한 베팅
2012년 11월 선익시스템은 이 연구원에게 제안한 아이디어를 기술화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에 손을 내밀었다. LG디스플레이가 협력사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신기술 장비 공모 제도’에 지원한 것. 선정된 협력사에는 기술 개발비를 최대 100%까지 지원해주는 상생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선익시스템의 제안 아이디어에 부정적이었다. 일본 미국 등 굴지의 장비업체들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1~2개월인 제안서 검토기간만 무려 7개월을 끌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 때문에 선뜻 자금 지원을 하기가 부담스러워서였다. 아이디어를 사장하기가 너무 아쉬웠던 이 연구원은 선익시스템 측을 설득해 기술 개발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료를 보강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6월 선익시스템이 요청한 기술개발 자금 3억7000만원 전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실패하더라도 협력사들의 선행기술 개발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임원진의 결단 덕분이었다.
선익시스템이 제안한 기술은 OLED 증착 과정에서 기판의 불량 여부가 공정 이후에나 검사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불량률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증착 중간에 검사 절차를 추가하는 아이디어였다. 이 기술이 성공하면 완제품 수백~수천장을 버려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지원이 결정되자 선익시스템은 기술 개발에 매달렸고 이 연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와 이메일로 개발 진척도를 점검했다. ◆경영 노하우도 전수
LG디스플레이의 경영 노하우 전수 프로그램인 스폰서 제도도 선익시스템에 도움이 됐다. 지난해부터 반기에 한 차례씩 총 세 번에 걸쳐 LG디스플레이 임원과 선익시스템 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경영 전반에 대한 애로사항을 청취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임영 선익시스템 부사장은 “대기업의 오랜 경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앞으로 협력사에 제공하는 교육시스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기술 공동 개발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경영, 회계, 품질, 기술 등 150개 분야에 교육 과정을 개설해 7622명의 협력사 직원들에게 지식을 전수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2차 협력사들에는 회계, 생산 관리 등 경영 노하우 전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은행과 공동 펀드를 구성해 협력사에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 기준 총 275개 협력사에 3696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최고생산책임자(CPO)는 “앞으로도 협력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현장에 꼭 맞는 다양한 상생 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수원=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