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정책은 구세주?…산업·노동력 카르텔에 경기회복 늦춰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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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 스토리 -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뉴딜정책이란 대공황 시절인 1933년부터 1938년 사이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시행한 일련의 경제정책을 말한다. 뉴딜정책은 당시 ‘사회주의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정부의 광범위한 시장개입을 초래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한 긴급 구호뿐 아니라 대규모 공공사업을 비롯 농산물 가격 지지, 금융 규제, 노동조합 합법화 등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정부 지출도 증가했는데 1929년 국민소득의 0.9%에 불과하던 정부 지출은 1933년 15.4%로 크게 증가한 후 1938년까지 대체로 그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재정적자도 늘어나 1934년에는 국민소득의 5.4%, 1936년에는 4.3%를 기록했다.
(29) 1930년대 대공황 4 : 뉴딜정책은 불가피했나
국민소득의 0.9%였던 정부지출, 1933년에 15.4%로 크게 증가
실질국민소득 회복 했지만
경기회복은 정책 효과 아닌
금·유럽 도피자금 美 유입 후 통화증가 인한 투자 촉진 덕
경제순환은 자연스러운 현상…정부 개입하면 재앙 부를 수도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
뉴딜정책이 시작된 1933년부터 미국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대공황 이후 1933년까지 35%가량 하락하던 실질국민소득은 1933년을 저점으로 점차 증가한다. 그때부터 1937년까지 국민소득은 33% 증가하고 일시적 경기 후퇴를 겪은 뒤 1938년부터 1942년 사이에 49% 증가한다. 그래서 1936년 실질국민소득은 대공황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1942년이 되면 경제성장률을 고려한 정상적인 경기 추세로 회복된다.
뉴딜정책 이후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 정책이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믿음이 퍼졌다. 이런 믿음 때문에 케인스 이론은 정부 재정정책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됐다. 뉴딜정책은 명시적으로 케인스의 경제이론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정부는 재정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적자재정은 긴급한 필요에 의한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은 케인스의 경제이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믿었던 시장의 자율 회복 기능을 불신했다. 그에 따르면 시장경제에서 완전고용은 흔하지 않은 특수한 사례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불완전고용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수요를 진작하기 위해 대규모 정부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공황 기간 시행된 뉴딜정책이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티나 로머에 따르면 대공황 때 경제를 회복시킨 결정적 요인은 통화 증가며 이에 비해 재정정책은 1942년 이전에는 경기 회복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즉 1942년에 이르러 국민소득은 대공황 이전 추세로 회복되는데 통화 증가로 70%가량이 회복됐으며 재정정책으로는 14%밖에 회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통화 증가도 중앙은행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1933년 이후 통화가 증가한 것은 금과 태환되는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금이 미국으로 유입됐고 유럽의 정치적 불안으로 미국으로 도피성 자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통화 증가가 이자율을 낮춰 투자를 촉진시켰던 것이다.
나아가 뉴딜정책이 경기 회복을 지연시켰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뉴딜정책은 노동조합을 합법화하고 일부 산업의 카르텔을 허용했는데, 이로 인해 경쟁이 제한되고 근로자의 협상력이 커지면서 경기 회복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소득 회복이 경제 추세보다 낮았는데 이런 차이의 60%가 이들 정책에서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르텔 산업의 고임금이 그 산업의 고용만을 줄인 것이 아니라 파급효과를 통해 다른 산업의 고용도 줄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용 수준은 기대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1933년 25%를 기록한 실업률은 1934년 15%로 낮아지지만 1940년까지도 여전히 10% 이상을 유지했다. 이에 비해 1939년 실질임금은 1929년보다 20% 높았다. 결국 산업의 카르텔이나 노조와 같은 노동력의 카르텔이 없었다면 경기 회복이 훨씬 강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뉴딜정책으로 재정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다. 뉴딜정책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기준으로 보면 변변한 재정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의 정부 지출 규모가 미국 국민소득의 38% 정도 되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재정정책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기 회복을 위해서 대규모 재정지출이 필요했다.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정책이 경기 회복에 효과적인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것은 현실 경제에 대한 인간 지식의 한계를 말해준다. 시장경제에서 경기 순환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시장에 의해 스스로 조정된다. 경기 순환에 따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려면 경기 순환의 원인뿐 아니라 경기대책의 효과와 파급 과정, 그리고 정책개입의 시점 등에 대한 섬세한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의 한계로 이를 잘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사실일 뿐이다.
뉴딜정책의 교훈은 정부가 긴급한 경제적 필요에 직면한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기 회복을 위한 개입은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순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운이 좋아 경기가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케인스가 주장했듯이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는 그것이 틀렸든 맞았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것이 정부의 정책 수단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무엇이 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렸는지 그 과정을 잘 알 수 없다면 이에 대한 처방은 신중해야 한다. 이런 처방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할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당장의 어려움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장 경제의 회복 능력을 망가뜨려 평생 정부의 정책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