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500종 시대] 맥주 맛에 눈 뜬 한국인 "대학 MT 때도 수입맥주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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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서울의 한 대학교 경영·학술 동아리 회장인 이동환 씨(25)는 11일 동아리 MT를 앞두고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하지만 ‘MT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대용량 페트병 맥주, 소주, 막걸리는 이씨의 장바구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수입맥주가 가득 채웠다. 이씨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문화는 사라지는 추세”라며 “각자가 좋아하는 수입맥주를 한 병씩 앞에 놓고 가벼운 대화를 즐기는 것이 요즘 대학가 풍경”이라고 말했다.
수입맥주, 최근 3년간 年 30%씩 고성장
국산 대 수입 비율, 9대 1서 7대 3으로
젊은층뿐 아니라 중장년도 외국산 찾아
실제로 편의점 GS25가 대학 주변 매장 200곳의 주류 매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입맥주는 올 1분기 전년 대비 28.7% 매출이 늘어났다. 국산 페트병 맥주의 매출이 1.5%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주 증가율도 3.8%에 불과하다. 요즘 국내 주류시장에서 최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는 단연 수입맥주다. 오랫동안 독과점 구조에 젖어 있던 국산 맥주의 ‘밋밋한 맛’에 물린 소비자들이 다양한 맛을 찾아 수입맥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맥주 고객은 단순히 젊은 층만이 아니다. 할인 이벤트 등으로 수입맥주 가격이 내려가면서 중장년층도 많이 찾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 1분기 수입맥주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4.2%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주류 시장은 0.3% 감소했다. 국산맥주와 수입맥주의 판매 비중은 2010년 89 대 11에서 올 1분기 73 대 27로 변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수입맥주는 일본 ‘아사히’다. GS25에 따르면 아사히는 품목별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2011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아사히는 ‘깔끔한 뒷맛’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아사히는 1987년 자체 개발한 ‘드라이 공법’을 사용해 청량감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아사히의 뒤를 잇는 것은 벨기에 ‘호가든’과 네덜란드 ‘하이네켄’이다. 호가든은 밀을 주원료로 사용한 ‘화이트에일’로, 국산 맥주와는 완전히 다른 향과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네켄의 경쟁력은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해 온 것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공식 후원사로,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이 주효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버드와이저’, 일본 ‘기린이치방’ 등도 상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김태훈 GS리테일 주류담당 상품기획자는 “‘스테판헤페바이젠’ 등 새로운 제품들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마트에서는 아사히, 버드와이저, 기네스 등이 판매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생소한 이름의 ‘마튼즈필제너’(이마트), ‘L바이젠’(롯데마트) 등이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이 맥주들은 대형마트가 독점으로 들여오거나 개발 단계에서부터 합작해 만든 제품이다. 사실상의 자체상표(PB) 상품이라는 말도 나온다.
마튼즈필제너는 1758년 설립된 벨기에 양조장 ‘마튼즈’에서 만든 제품이다. 이마트 계열 주류 수입업체인 신세계L&B가 독점 수입권을 가지고 있다. 마튼즈의 강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용량을 일반 캔맥주의 두 배인 1L로 늘리면서도 가격은 아사히 500mL보다 저렴한 24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롯데마트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는 L바이젠, L라거, L다크는 독일의 유명 맥주업체인 웨팅어가 롯데와 합작해 만든 맥주다. 제품 개발과 생산은 웨팅어가 전담하고 롯데는 브랜드 디자인을 맡는 구조다. L시리즈 역시 저렴한 가격으로 어필하고 있다. 500mL 한 캔의 가격은 1600원이다. 웨팅어의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웨팅어 필스’, ‘웨팅어 슈퍼포르테’ 등과 비슷한 맛을 내면서도 가격은 1000원가량 싸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