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열흘만에 그만두는 석좌교수… '교수의 품격' 높여라

법령상 겸임교원 해당, 가이드라인 없어… 대학 자정기능 필요
[ 김봉구 기자 ] “엄밀히 따지면 석좌교수는 비전임 교원의 하나일 뿐이다. 석좌교수란 이름이 갖는 무게와 달리 법령상으론 시간강사나 겸임·초빙교수 중 하나에 속한다.”

보통 석좌교수는 탁월한 학술적 업적을 쌓은 석학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자리로 통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설명은 석좌교수에 대한 통념과 거리가 멀다. “겸임·초빙교수로 임용하기에 급이 안 맞는 인사를 석좌교수란 ‘직명’으로 대우하는 방편일 수 있다”고 했다. 석좌교수의 맨얼굴은 '이름값'이란 얘기다.실제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7조(겸임교원 등)를 보면 “학교의 장은 겸임교원·명예교수·시간강사·초빙교원 등을 각각 임용 또는 위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석좌교수 관련 내용은 따로 두지 않았다.

지난해 ‘윤창중 사태’로 3개월 만에 물러난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올 3월 신설된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석좌교수로 왔다. 그러나 석좌교수 생활은 더 짧았다. 그는 지난달 11일 학교에 사표를 냈다. 전날 KT스카이라이프 사장에 내정됐기 때문. 학기 시작 열흘 만에 그만둔 것이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석좌교수 임용으로 뒷말을 낳았다. 최근 이 대학 로스쿨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 당시 ‘외압 논란’을 빚은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석좌교수 임용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석좌교수로 임용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경우 ‘실정법 위반’ 전력을 들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석좌교수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뚜렷한 연관성 없는 정·관계 인사들에게 자리를 남발한 탓이다. 대학들의 인맥관리용 자리로 전락한 석좌교수가 스스로 격을 떨어뜨린 것이다.

대학들이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등 정·관계 인사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인맥을 쌓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대학 측은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사회적 공로, 해당 분야 경력 등을 따져 석좌교수를 임용한다고 설명한다. 대학 관계자는 “정·관계 인사의 석좌교수 임용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건국대의 경우 아예 석좌교수 제도와 별도로 ‘석학교수’를 두고 있다. 200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저 콘버그 교수와 기술경영(MOT) 창시자인 윌리엄 밀러 스탠퍼드대 명예교수 등 4명이 석학교수다. 건국대 관계자는 “석학교수는 말 그대로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 석학이 대상이며, 석좌교수는 학문적 업적에 초점을 맞춘 석학교수보다 포괄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처럼 각 대학의 석좌교수 임용기준과 자격요건은 자체 내규에 따른다. 이런 허점 때문에 석좌교수 제도가 대학 관련 정책이나 국책사업 등에 대비한 ‘직·간접 로비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교육부는 석좌교수 제도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나 특정한 내용이 없어 석좌교수 임용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학의 자정 기능이 요구된다. 현장 경험과 실무경력을 전수하는 겸임·초빙교수와는 다른 ‘사회적 인식’을 감안, 연구·교육 등 석좌교수 임용의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품격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국비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권용성 교무처장은 “학교 역사가 짧고 교수들도 젊은 편이다. 때문에 부족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각 전공별 석좌교수를 한 명씩 초빙했다” 며 “정·관계 인사의 석좌교수 임용은 로비용 성격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학이 학문적·교육적 필요에 따라 석좌교수를 임용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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