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수형과 뺨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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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1999년 봄, 일본의 한 아파트에서 23세 새색시가 갓난쟁이 딸과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검침을 나왔다면서 괴청년이 들이닥쳤다. 그는 색시를 목 졸라 살해한 뒤 강간하고 울던 아이마저 잔인하게 죽였다. 범인은 나흘 만에 체포됐다. 그러나 법원은 그가 19세 미성년자라며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내와 핏덩이 딸을 잃은 신랑은 법정에서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내가 죽이겠다. 나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형을 언도하라’고 절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범인 인권법은 있어도 피해자 권리법은 없는 현실을 하소연했다. 그 노력 끝에 피해자의 공판 참여법이 생겼고, 9년 만에 범인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사형논쟁은 목숨을 다루는 문제여서 늘 조심스럽다.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눈에는 눈’ 개념의 사형 범죄가 30여개나 규정돼 있다. 구약 율법(토라)도 사형으로 범죄를 응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1500~1550년 7만명 이상이 사형됐다. 사형폐지론이 등장한 것은 18세기였는데, 이때 논쟁은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최초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탈리아 학자 베카리아는 “법이 스스로 살인죄를 범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라며 반대론을 폈다.
그러나 칸트는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루소도 “사형 남발에는 반대하지만 나를 죽이려는 살인자를 살해하는 데 동의하는 것과 같이 자기가 살인자가 되면 죽는 데 동의한 것이므로 살인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토르 위고는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사형수의 불안심리를 강조하며 사법살인에 반대했다. 그러나 범인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국내에서는 사형폐지론자였던 판사 출신의 서석구 변호사가 ‘나는 왜 사형 존치론자가 되었나’라는 책을 통해 흉악범죄 예방을 위한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는 64개국이고 폐지국은 120여개국이다. 집행 방법으로는 교수형이 많지만 북한과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는 공개총살형을 채택하고 있다. 엊그제 이란의 사형장에서 피해자 어머니가 뺨 한 대로 살인범을 용서하고 목 올가미를 풀어준 일이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죽은 아들이 꿈에서 ‘좋은 곳에 있으니 보복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현실 법체계를 초월한 영적 징벌이라고 해야 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