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포기 안할게"…두손 모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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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함께 나누자"…각종 행사 취소·축소“종교와 신념을 떠나 기도합시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래서 우리의 아들딸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건강하게 살아서 구조되기를.”
사고 55시간 만에 선내 진입, 실종자 수색
종이우편물(DM) 발송 전문업체 대표인 양순철 씨(51)가 여객선 침몰사고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18일 한 고교 동기 밴드에 올린 글이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전 국민이 하나가 됐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모두가 실종자의 가족이요 친구다. 실종자들이 차가운 주검이 돼서 우리에게 올 때마다 전 국민은 비통해하고 있다.
사고 55시간 만에 선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구조작업이 지연되면서 실종자 가족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듯이 전 국민은 애를 태우고 있다.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은 지금 실종자의 무사 귀환과 실종·사망자 가족의 슬픔을 나누려는 기도와 위안의 품앗이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기쁨의 열기를 나눴던 우리 국민은 지금 슬픔과 아픔을 함께하는 중이다.
온 국민은 사실상 일손을 내려놓았다. 봄철을 맞아 계획한 각종 행사는 잇달아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국민생활체육회는 오는 24일부터 사흘간 강원 속초에서 열 예정이던 ‘2014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무기 연기했다. 경남도 체육회와 김해시 등은 24일 김해시 일대에서 열려던 제53회 경남도민체전을 가을로 넘겼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에서 4~5월 계획한 75개 행사를 취소, 또는 연기했다.
노동계도 희생자 애도…주말 집회 취소
전국 각지의 향우회와 동문회 등도 등반대회 체육대회 회식 등을 없던 일로 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은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이번 주말 집회를 취소했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초·중·고교의 의견을 모아 학교장 훈화나 담임 조례·종례 시간을 활용해 애도 시간을 갖기로 했다. 동국대가 이 대학 사범대 출신인 고 최모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17일 마련한 분향소에는 이틀째 조문객이 몰렸다. 국민대도 동문인 고 남모 교사의 분향소를 교내에 마련했다.
각종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추모의 글이 크게 늘었다.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여승무원 고 박지영 씨(22)에 대한 의사자 선정 청원 두 건에는 누리꾼들이 대거 참여했다. 17일 1004명을 목표로 시작된 청원은 2300명을 넘어섰고, 1만명을 목표로 한 청원에는 5900여명이 신청했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해자와 그 가족이 만성스트레스장애(PTSD)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보듬는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직원들에게 음주·가무 자제령을 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던 정치권도 숙연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로 인한 국민의 분노가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규만 한국심리건강센터장은 “한국은 집단문화가 강해 이번 사고도 내 일처럼 느끼는 국민이 대다수”라며 “간접적 트라우마로 번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호 선임기자/강경민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