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업주부는 신용카드 못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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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전업주부들은 이제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최근 일부 신용카드사들이 이런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열흘 전 금융감독원이 정보유출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업주부들로부터 신용카드 가입신청서를 받을 때 남편의 신상 정보를 적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업주부들은 남편의 소득 직장 등을 신청서에 기재해 신용을 검증받고 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카드 개인정보 유출사태 후속조치로 내놓은 이번 종합대책에서 남편의 개인정보를 임의로 적어내는 행위를 금지할 것을 주문했다. 신용정보보호법상의 ‘자기 정보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에서다. 결혼기념일, 주거 형태 등의 세세한 정보가 카드회사와 모집인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자 일부 카드사들이 ‘전업주부의 개별 카드 발급이 불가능해졌다’며 민감한 여심(女心)을 앞세워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배우자 신상정보를 적지 않으면 전업주부는 신용을 입증할 수 없어 카드 발급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주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가족카드를 발급받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전업주부를 독립적인 경제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인권 침해 소지마저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 말대로라면 굳이 전업주부가 아니어도 문제를 제기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는 해당 규정의 해석을 침소봉대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 남편의 신상정보를 안 써내도 전업주부의 카드 발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지금도 카드사들은 전업주부들의 신청서에 기재된 남편의 전화번호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달라진 점은 앞으로는 먼저 카드를 신청하는 주부에게 연락해 남편의 전화번호를 받아야 한다는 정도다. 카드사들로선 정보유출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터라 당국의 조치가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불편’을 ‘불가능’으로 둔갑시키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과잉반응이다.
신용카드사들이 정보유출 사태를 바라보는 싸늘한 여론을 아직 직시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불만을 부풀리기에 앞서 일련의 규제를 불러온 귀책사유를 되돌아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