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오 씨 "미아된 작품, 작가 찾았을 때 가장 기뻤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관리담당 '레지스트라'

9500여 작품 밀착관리 전문가
미술관장 등 3명만 수장고 출입
연합뉴스
“제가 그만두면 이 금쪽같은 작품 관리 노하우를 넘겨줄 사람이 없어요. 정말 걱정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 책임자인 권성오 학예연구2실 소장작품관리담당 주무관(51·사진)은 21일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장고에 보관된 국가 소유 예술품 9500여점의 반출입·대여·관리 업무 등을 담당하는 ‘레지스트라(registrar)’ 다. 권씨는 “국내에서는 삼성리움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단 두 곳만 레지스트라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큐레이터 등 다른 미술관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한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1988년 4월 미술관에 입사한 권씨는 작품관리, 전시 등을 두루 담당하다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레지스트라 업무를 해왔다. 수장고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그와 함께 2인1조를 이룬 미술관장, 또는 수장고 운영관(학예연구2실장) 둘 뿐이다. 그만큼 권씨가 맡은 일은 중책이다. 수장고는 3중 보안 시스템으로 걸친 두 개의 철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2008년에는 화가 주경의 1930년 작 드로잉 ‘인물습작’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를 포함해 여러 직원이 내부감사 및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도난이 아닌 분실로 결론났다. 권씨는 “이 사건 이후 수장고 출입이 엄격해지고 관리가 체계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뿌듯했던 기억으로 ‘미아’가 된 작품의 작가를 찾아낸 것을 꼽았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안돼 작품관리 업무를 담당할 때 수장고에 있던 2800여점을 일일이 확인하며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손상된 한 작품을 발견했다. 미술 공부차 틈틈이 보던 일제 치하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서 본 작품과 비슷하다고 느낀 권씨는 조사에 들어갔다. 결국 해당 작품이 1937년 ‘격자무늬옷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입선(이갑향 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권씨는 “그럴 때 느끼는 기쁨과 열정 때문에 계속 작품관리 업무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장고에는 한국화 조각 판화 공예 드로잉 등 10개 분야 9500여개 작품이 저장돼 있다. 미술관이 직접 구매하거나 다른 기관으로부터 관리전환되거나 기증받은 작품들이다. 수장고의 온도 습도 조도 등 물리적 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권씨 몫이다. 1년에 40여일간 약 9500개 작품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업무 인력은 본인을 포함해 계약직 직원 한 명뿐이라며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권씨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은행 금고 같으면 이런 식으로 관리하겠느냐”며 “특정 직원이 그만둬도 해당 업무가 지속적으로 인수인계될 수 있는 환경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