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경제…내수가 가라앉는다

세월호 참사에…정부 "5월초 관광주간 홍보도 중단"

"정부, 경제 불안심리 해소에 노력해야"
1997년 8월31일 새벽 ‘국민의 공주’로 불리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전역은 큰 슬픔에 휩싸였다. 그가 살던 런던의 켄싱턴궁과 그의 주검이 안치된 세인트폴성당 앞에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는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고 영국인들은 한동안 오락이나 스포츠 행사를 대폭 줄였다. 이 여파로 그 해 2분기(4~6월) 전년 동기 대비 7.2%(명목가격 기준)이던 가계소비 증가율이 3분기(7~9월)에 5.8%로 둔화됐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도 이와 비슷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후진국형 참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국가 브랜드 가치가 실추되고 회복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한 내수가 다시 침체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세월호 희생자 및 실종자들과 아픔을 함께한다는 차원에서 기업들의 각종 모임과 단체활동이 잇달아 취소되고 학교와 사회단체 등의 여행과 오락활동 등도 현저히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도 올해 처음 시행하려던 관광주간 홍보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다음달 1일부터 11일로 예정된 관광주간에 정부는 국내 관광을 활성화해 내수 경제 활력의 지렛대로 삼을 계획이었다.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이 기간에 국내 휴가를 가도록 독려할 예정이었다.

더욱이 이번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실추된 것은 향후 경제 운용에 큰 부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들어 직접 챙기고 있는 투자 활성화와 규제개혁 동력이 약화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3.9%)를 달성하는 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국내외 재난 사고가 경제에 미친 여파를 면밀하게 분석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차분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직후 나온 9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4% 감소하며 9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다음달인 10월에는 밀렸던 소비가 되살아나는 일종의 ‘풍선효과’로 소비가 7.1%나 급증했지만 11월에는 다시 월간 기준 사상 최악인 3.7% 감소를 기록했다.

2005년 미국 남동부를 휩쓸며 2500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에는 소비 감소로 고용(비농업부문)이 3만5000명 줄었다.

한국에서도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로 192명이 사망했을 당시 도소매판매가 월간 기준으로 4년여 만에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신용카드 과다 발급으로 내수가 침체된 ‘카드 사태’ 영향이 컸지만 지하철 사고 이후 국민의 심리적 충격이 소비에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실제 여행업계는 이번 사고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선박을 통한 단체여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이미 잡혀 있던 예약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여객선을 운행하는 W사 측은 “현재 예약된 13건의 수학여행이 모두 ‘재검토’ 상태로 바뀌면서 취소 또는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며 “일반 단체여행객의 예약 중에서도 30%가량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이러다 투자까지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불안 심리가 사회적으로 10% 늘어나면 투자가 1%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른 시일 안에 (무기력한 분위기가) 해소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선 더 큰 불확실성에 휩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우리 경제의 규모가 1400조원에 달하는 등 이전과 달리 몰라보게 커진 만큼 이번 세월호 사고의 충격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단기적으로 소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경기 회복 흐름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제도적, 심리적 측면에서 선진화하는 계기를 잡는다면 경제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침체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국민은 정서적, 심리적으로 힘들어지고 경제에도 부정적”이라며 “지금은 국민들도 마음을 추스르고 정부도 경제 불안심리 해소에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주용석/조진형/김주완/마지혜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