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규제 없애라] 또 다른 걸림돌 기부채납, 사업비의 30% 내라니…

한경 기업 신문고

기준 애매한 '준조세' 성격

정부 가이드라인도 모호
전국서 관련소송 잇달아
부산의 한 자치구는 관할 지역 안에 물놀이장을 만들었다가 2년 전 이를 철거했다. 이 중 일부 시설은 건설사를 통해 기부채납한 것이었다. 이용자가 적고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자 지은 지 몇 년 안돼 다시 부순 것이다.

객관적 기준 없이 운영되는 기부채납(공공기여) 제도는 부동산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로 꼽힌다. 기부채납은 사업 시행자가 아파트나 업무시설 등을 건설할 때 도로·공원 같은 공공시설을 직접 조성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종의 개발 이익 환수 장치다. 그러나 ‘기부’라는 명칭과 달리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총 사업비의 30%가량을 지자체와 정부에 부담금 기부채납 등의 명목으로 납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기부채납에 객관적인 기준이 불분명하고 상한선도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시행사 B업체 대표는 “기준이 없다보니 일부 지자체에서는 회계사를 통해 개발 이익이 얼마나 날 것인가를 추산한 뒤 기부채납 규모를 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한 자치구가 일단 기부채납부터 받은 뒤 소용이 없어지자 물놀이 시설을 철거한 사례는 주먹구구식 기부채납 실태를 잘 보여준다. 업계는 개발사업에 광역교통시설부담금과 과밀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이 따로 부과되기 때문에 기부채납은 이중 부담이라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뒤늦게 지자체의 자의적인 기부채납 제도 운영을 막기 위해 ‘기반시설 기부채납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구체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기부채납을 둘러싼 소송도 잇따른다. 대구 범어동에서 15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설한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시행사 해피하제는 지난해 대구시를 상대로 기부채납한 상가 및 도서관 건립 비용 585억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구시는 “시행사가 자발적으로 기부채납했다”고 말했지만 시행사 측 설명은 달랐다. 시행사 관계자는 “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업승인이 미뤄질 게 뻔해 어쩔 수 없이 기부채납을 수용했다”며 “아파트 건립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부채납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최근 시행사 패소로 일단락됐지만 현행 기부채납 제도에 대한 업계의 부정적인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강제력이 있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인허가를 무기로 사업과 무관한 편의시설 등을 부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도록 기부채납의 비율을 법률에서 일정한 범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김동현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