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이식자전거 '선두' 브롬톤, 10초 만에 접고 펴는 자전거…'자출족' 로망이 되다

Best Practice

1976년 英 앤드루 리치 설립
교통난에 접이식자전거 개발
'마크 원' 판매로 본격 생산

전문 경영인 애덤스 등 영입
10년 만에 매출 8배 급증

품질 위해 부품 자체생산
대당 200만원…그래도 인기
1800년대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등장한 이래 자전거는 늘 타거나 끌고 가는 운송수단이었다. 100여년이 흐른 1976년 영국의 자전거 제조업체 브롬톤(Brompton)이 접는 자전거를 세상에 선보이기 전까지는…. 이때부터 자전거의 패러다임은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품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 브롬톤은 두 단계의 간단한 동작을 통해 10~20초 만에 네모난 형태로 접힌다. 완전히 접힌 상태의 자전거는 대략 바퀴(16인치) 하나의 크기에 불과하다. 버스를 타다가 막히면 다시 내려서 펴고 달리면 된다. 굳이 자전거 도로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브롬톤이다.

고정관념 깬 발명가의 집념전 세계 자전거 마니아는 물론 이른바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로망이기도 한 명품 자전거 브롬톤은 영국 런던의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던 한 발명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브롬톤의 창업자인 앤드루 리치다. 그는 꽉 막힌 도로에서 기어가는 자동차가 되레 자전거보다 느린 현실이 늘 불만이었다. 케임브리지 공대 출신의 리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접어서 버스나 전철로 갈아타고, 다시 내려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접이식 소형자전거’를 떠올렸다.

리치는 런던 외곽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디자인 고안에 몰두했다. 몇 달의 연구 끝에 설계도면을 완성한 그는 자전거 제조업체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76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회사명인 브롬톤은 리치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던 성당의 이름이다.첫 시제품을 개발한 이후 5년간 시행착오를 겪던 브롬톤은 1981년 ‘마크 원’ 모델을 내놓으면서 본격 생산에 나선다.

대개의 창업 과정이 그렇듯 브롬톤의 주행도 순탄치는 않았다. 은행은 사업자금 대출에 인색했고 자전거 소매업체들도 좀처럼 제품을 취급해주지 않았다.하지만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접이식 자전거에 대한 호응에 힘입어 조금씩 판로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수출 분야의 공로로 ‘여왕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엔 독일 자전거단체(ADFC)가 선정하는 올해의 자전거에 오르는 등 꾸준히 가치를 인정받았다. 영국의 영화감독 가이 리치, 호주 출신의 영화배우 휴 잭맨 등이 브롬톤을 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인지도도 높아졌다.인재 등용, 제조 혁신이 성공 발판

브롬톤이 본격적인 상승 궤도에 올라선 계기는 2002년 전문 경영인으로 윌 버틀러 애덤스를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한 것이다. 뉴캐슬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애덤스는 당시 영국의 한 화학업체에서 근무하던 28살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애덤스가 브롬톤의 경영을 책임지게 된 데는 말 그대로 운명과도 같은 우연이 작용했다. 장거리 버스여행이 그의 인생 여정까지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마침 애덤스의 옆 자리에는 브롬톤의 고위 임원이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애덤스의 잠재력을 간파한 이 임원은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호감을 표시했다.애덤스는 갑작스런 제안에 공장을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답했다. 접이식 자전거의 존재조차 몰랐던 그가 스카우트 제의를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막상 찾아간 공장은 작고 어수선했다. 대학에서 배운 월드 클래스급과는 거리가 먼 공장의 모습에 흥미을 잃어가던 애덤스의 눈에 브롬톤의 실물이 들어왔다.

193㎝로키가 큰 애덤스는 자그마한 브롬톤을 보며 ‘내가 올라타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애덤스는 “막상 자전거에 앉은 뒤엔 발명가 리치가 만들고 있는 브롬톤 자전거가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난해 7월 BBC와의 인터뷰에서회고했다.

결국 브롬톤에 합류한 애덤스는 경영 효율화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예산계획을 다시 짜고 비(非)핵심 부품은 과감히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작업 공간에 여유가 생기자 제품 생산량도 늘릴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장기는 용병술. 애덤스는 “나는 그동안 잘한 것이 없다. 잘한 것이 있다면 모든 면에서 내가 지시할 업무에 관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덤스 영입 이후 상승세가 두드러진 브롬톤은 현재 연간 4만5000대의 제품을 생산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10년 만에 판매량이 7~8배 늘어난 것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지난 3일 “브롬톤의 판매량이 매년 20%가량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브롬톤의 제품을 수입하는 곳은 현재 44개국에 이른다.

모방을 허용치 않는 ‘장인정신’

난방도 안 되는 런던 서쪽 외곽의 조그만 공장에서 3명으로 출발한 브롬톤은 이제 직원 200여명을 거느린 세계적인 자전거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애덤스의 경영 수완 못지 않게, 현재 기술고문으로 있는 리치를 필두로 한 깐깐하고 고집스럽기로 유명한 품질 경영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힌다.

브롬톤 자전거를 생산하는 런던 브렌트퍼드 공장에서는 1200개의 부품 중 80%를 자체 생산한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맞춤형 생산 장비만 500여종에 이른다.조립은 물론, 수공예, 점검 과정 등 각 공정마다 창업 초기 멤버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해외 공장도 없다. 수출품의 대부분은 런던에서 만든 것들이다. 애덤스는 “해외 시장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인건비가 싼 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할 생각은 없다”고 외신들에 말한 적이 있다. 당장 수익은 나겠지만 품질 유지가 어려워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제조 기법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도 해외 공장 건립을 꺼리는 배경이다. 브롬톤이 범용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 브롬톤에만 쓸 수 있는 독자적인 부품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덤스는“예컨대 중국에서 우리 제품을 분해해서 모방하려 시도할 수는 있지만 브롬톤의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자체 개발한 규격의 독자적인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자신했다.품질을 강조하는 만큼 가격은 비싼 편이다. 한국에서도 대당 보통 100만~200만원을 호가한다.브롬톤은 올해 미국 뉴욕에서 판로 확대를 추진 중이다. 애덤스는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접이식 자전거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해법”이라며 “세계의 모든 도시에서 브롬톤을 타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