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맞이 분주한 충남 내포 천주교 성지 가보니…참수·생매장…슬픈 순교 역사 고스란히

교황, 김대건 신부 생가 솔뫼·순교지 해미 8월 방문
서산·당진·홍성·예산 등 내포지역에 세계가 주목
충남 서산의 해미 성지를 담당하는 백성수 신부가 여숫골에 생매장된 무명 순교자들의 묘 앞에서 당시의 천주교 박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서산시 해미읍성 방문을 환영합니다.’

지난 23일 충남 서산 해미면의 해미읍성. 고색창연한 읍성의 정문 옆 높다란 석벽에 활짝 웃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인쇄한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8월17일 이곳 해미읍성에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 때문이다. 8월14~18일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의 주요 방한 목적은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릴 ‘윤지충 바오로 등 순교자 124위 시복식’ 집전이다. 두 행사의 연결고리는 한국 천주교 특유의 순교신앙이다. 오는 8월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품에 오르는 순교자 124명 가운데 49명이 충남 서부 지역인 ‘내포’ 출신이다. 내포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들어간 지역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당진, 서산, 예산, 보령, 홍성 등을 내포라고 불렀다. 교황이 방한할 천주교 순교성지를 미리 둘러봤다.

해미읍성 안 옥사 앞에는 수령 300년쯤의 회화나무가 서 있다. 1790~1880년 천주교 신자를 감옥에서 끌어내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했던 나무다. 옥사에는 당시 교인을 가뒀던 모습과 곤장을 때렸던 형틀 등이 재현돼 있다.

이곳에서 끌려 나온 교인들은 읍성의 서문 밖에서 처형당했거나 해미천이 바다와 만나는 끝머리로 끌려가 참수당했고, 산 채로 생매장당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백성수 해미성지 담당신부는 “당시 끌려오던 교인들이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것을 사람들이 ‘여수머리’로 들은 탓에 이곳이 ‘여숫골’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순교자들을 재판했던 읍성의 동헌부터 해미 시내를 거쳐 이곳에 이르는 1.5㎞ 구간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에는 성지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연간 13만명가량이 찾아오는 해미성지를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문할 예정이다. 교황의 방한 공식 일정에 포함된 또 다른 방문지는 당진 솔뫼성지. 한국인 최초의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터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던 곳.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김대건 신부 생가는 현장에서 발굴된 기왓조각 등을 토대로 고증을 거쳐 2004년 복원됐다.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상, 기념성당과 기념관, 솔뫼 아레나 등이 조성돼 있다. 솔뫼성지를 담당하는 이용호 신부는 “라틴어와 불어, 영어, 중국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김대건 신부는 조선의 계급사회에서 모든 이의 평등을 꿈꾼 자유사상가이자 아시아의 화폐 개혁까지 생각한 선진 유학생이었다”고 말했다. 8월15일 교황은 솔뫼에서 아시아청년대회 참가자 6000여명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교황의 방문지는 아니지만 내포에는 이 밖에도 많은 순교성지가 있다. 지금의 홍성 지역인 조선시대 홍주목은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가 나왔을 정도로 천주교세가 강했던 곳. 홍주읍성 안에 순교자들이 갇혔던 감옥이 있고, 읍성 밖에는 교인들이 참수당했거나 생매장당한 순교터가 있다. 홍주에선 기록이 확실한 순교자만 211명, 무명 순교자까지 합치면 700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때 희생된 황일광은 백정 출신 순교자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400명의 신자들이 신앙공동체인 교우촌을 형성했다가 모두 순교한 당진시 합덕읍 신리 성지, 내포 지역의 첫 성당이자 충청지역 천주교회의 모본당인 합덕성당, 한국인 1·2호 사제인 김대건·최양업 신부의 집안에 복음을 전한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생가터가 있는 예산군 신암면 여사울 등도 내포의 중요한 순교성지다. 교황의 내포 순교성지 방문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의 순교신앙에 세계의 이목이 쏠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산·당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