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에 빠진 경제] 휴대폰 출시·신차 발표까지 연기…정상적 기업활동도 위축

5월 특수 앞두고 시름

팬택 '베가 아이언2' 발표 행사 미뤄
패션 진출하는 일진그룹 론칭쇼도 못해
신격호 회장 '43년 마을잔치' 안 열기로
< 노란 리본 물결 > 서울 청계천 광장에는 24일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사용자들이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활용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어떻게 하겠습니까. 온 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인데 새 제품 내놨다고 요란을 떨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롯데칠성음료의 마케팅 및 홍보담당 임직원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고 한다. 2년 동안 준비한 롯데맥주 ‘클라우드’를 최근 출시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여파로 초기 마케팅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새 제품은 초기에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데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니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이보다 국민의 정서를 살피고 동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제품 알리지 못해 ‘속앓이’

신제품에 대한 마케팅과 홍보를 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기업은 비단 롯데칠성만이 아니다. 일진그룹 계열사인 오리진앤코 임직원도 마찬가지다. 오리진앤코는 일진그룹이 패션 쪽으로 사업다각화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일진은 금강에서 브랜드부문장을 지낸 남기흥 씨를 대표로 영입하고 캐나다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조프레시’를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4일 서울 청담동 비욘드뮤지엄에서 론칭 패션쇼를 열기로 했었다. 이 자리엔 이 브랜드를 만든 조 밈란 디자이너도 참석하기로 했으나, 세월호 사고로 행사를 5월 말로 연기했다.

팬택 역시 이날로 예정했던 신제품 ‘베가 아이언2’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팬택은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어 팬택 임직원도 깊은 애도를 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도 지난 17일 ‘다음 영화’ 서비스에서 생중계할 예정이던 영화 제작발표회를 연기했다. 금호타이어도 오는 28일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기로 한 신제품 ‘솔루스 TA31’ 발표회를 취소했다. ◆마케팅·광고 올스톱

파리바게뜨는 ‘별에서 온 그대’로 최고 스타로 떠오른 전지현을 모델로 TV광고를 준비했다. 이달 중하순부터 이 광고를 내보내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하려 했으나 이 광고에서 전지현이 지나치게 밝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국민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광고를 당분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카메라업계도 성수기인 5~6월을 앞두고 대대적인 마케팅과 광고를 준비했으나 시기를 미루고 있다. 니콘이미징코리아는 추성훈·추사랑 부녀를 모델로 정하고 CF 촬영까지 모두 마쳤다. 이 광고는 보급형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D5300’을 알리는 것이지만 지금은 광고를 내보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는 6월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준비했던 맥주업계도 울상이다. 월드컵이란 대규모 스포츠행사가 벌어지는 여름엔 맥주가 평소보다 20~30% 이상 더 팔린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최근 각각 ‘에일스톤’과 ‘뉴하이트’를 내놓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지만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양주업체인 페르노리카코리아도 28일로 예정했던 임페리얼 출시 20주년 행사를 취소했다. 이 회사는 침체에 빠진 위스키의 판매 확대를 위해 20주년 한정판을 준비하는 등 여러 행사를 기획했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한다는 뜻에서 행사를 무기한 연기했다. 페라리를 수입 판매하는 FMK는 29일로 예정했던 ‘페라리 캘리포니아T’ 출시행사를 연기했다.

◆재계 총수도 활동 자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작년까지 43년째 해온 울산 고향마을 잔치를 올해는 취소했다. 신 회장은 울산지역 공업용수댐인 대암댐 건설로 고향 둔기마을이 수몰되고 주민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1971년 옛 고향 사람들과 함께 ‘둔기회’를 조직했으며, 매년 5월 초 마을잔치를 열어 왔다. 지난해 잔치에는 주민 10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5월3일로 예정돼 있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세월호 침몰사고에 따른 희생자 애도 분위기를 감안해 잔치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당초 올해 고향마을 잔치에 쓸 비용 전액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사용하라는 게 신 회장의 뜻”이라고 전했다.

박준동/정인설/전설리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