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베니스·베를린·상파울루·광주…2년마다 현대미술 흐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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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아트페어와 함께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의 하나로 ‘비엔날레’로 불리는 국제전을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을 지닌 비엔날레는 말 그대로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를 뜻한다.아트페어가 미술품의 판매를 목표로 하는 데 비해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고 새로운 예술 담론을 만들어내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아트페어가 주로 미술품을 소장하려는 컬렉터를 겨냥한 것인 데 비해 비엔날레는 창조적인 영감을 얻고자 하는 미술계 종사자와 미술 애호가를 겨냥한다. 그러나 두 행사는 서로 동떨어진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43) 비엔날레란 무엇인가
비엔날레는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철저하게 실험성과 작품성으로 승부를 걸지만 이곳에 출품됐던 작품들은 곧 소장 가능한 형태로 재가공돼 아트페어에 나오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나 설치 작품이 비디오 또는 사진 연작으로 제작되듯 말이다. 마치 갤러리와 옥션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는 모두 갤러리가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 점은 컬렉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엔날레의 동향을 살피는 일은 곧 향후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미술을 감상의 대상으로 보는 쪽이나 투자로 보는 쪽에나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비엔날레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작품 판매는 이뤄지지 않지만 이곳에서 주목받은 작가는 작품가격의 상승효과를 누리게 되며, 그 작가를 전속작가로 둔 화랑 역시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경제적 실익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객이 행사가 열리는 도시에서 먹고 머무름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디어들이 앞다퉈 보도해 축제분위기를 띄운다. 부대효과, 후광효과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비엔날레의 모델이 된 것은 1851년 런던 수정궁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다. 방문객에게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주최 측이 국제 미술전람회를 연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비엔날레의 효시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다. 1895년 베니스 시 당국이 새로운 예술시장을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창설했다.
국가관별 전시로 운영되는 이 비엔날레는 초기에는 상업적 판매를 병행했지만 1960년대 말부터 판매를 포기하고 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 행사가 매번 기획하는 주제전이 세계 미술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도 국가관을 처음으로 설치한 1995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해 한국 미술의 해외 홍보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이후 생겨난 비엔날레는 대부분 베니스 비엔날레의 모델을 좇아 지역적 특색을 강조하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 독일의 베를린 비엔날레,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의 광주 비엔날레, 중국의 상하이 비엔날레가 그 대표적인 예다. 독일의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도큐멘타’는 2년마다 열리는 행사는 아니지만 비엔날레와 같은 성격의 전시회로 꼽힌다. 나치 정권 아래 퇴폐미술로 낙인 찍혔던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청기사파 등 현대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1955년 창설된 이 행사는 점차 현대미술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특히 아방가르드의 산실로 통하는 이 행사가 열릴 때면 전 세계인의 이목이 카셀로 쏠린다. 2012년에는 100일 동안 유료 관객 90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다.
해외 유수의 비엔날레가 전 세계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비평가,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를 불러 모으는 데 비해 국내 비엔날레는 광주 비엔날레 등 몇몇 전시를 빼곤 아직은 동네잔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의 성공과 지방자치단체의 활성화를 계기로 비엔날레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돼 지역마다 앞다퉈 행사를 만들어 ‘비엔날레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운영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점이다. 예산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판부터 벌여보는 형국이다. 비엔날레의 위용을 갖추려다 보니 수준 미달의 외국작가를 초청하고 급조된 국내작가 작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꼴불견은 피할 수 없다. 비엔날레의 본질을 되새겨 볼 일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