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은행, 業에 대한 인식 재설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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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사고 끊이지 않는 금융권재무경제학에서 자주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가 소위 주인-대리인 문제다. 이는 주주와 경영자 관계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되는 이론이다. 주주의 돈으로 만든 회사에서 경영자는 경영행위를 통해 주주 이익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성실한 경영자가 열심히 노력해 회사 수익을 증대시키면 주주 이익은 증가한다. 그런데 주인-대리인 문제가 지적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경영자가 주주 이익에 봉사하는 척하며 딴짓을 한다는 것이다. 즉 사적 이익을 취함으로써 주주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호화로운 사무실이나 가구, 지나친 수준의 급여나 보너스 같은 것을 떠올리면 대략 주인-대리인 문제가 이해된다.
남의 돈 막 다루는 도덕적해이 탓
규정 따르는 자세와 내부혁신 절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
주식회사 제도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돈을 제공하는 주주와 경영자원을 제공하는 경영진의 절묘한 조합이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조합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경영진에게 있어서 주주의 돈은 ‘남의 돈’이라는 사실이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일 것이다. 만일 ‘자기 돈’이라면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아끼고 절약해 최대한의 이익을 올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스톡옵션 같은 제도적 장치가 도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가가 오르면 경영진에게 주가 상승에 비례한 보상을 해주는 경우 경영진은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다루게 됨으로써 쌍방이 모두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고 보면 은행도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은행은 여러 고객들의 예금, 즉 ‘남의 돈’을 맡은 후에 이를 모아서 대출로 운용한다. 대출이자를 받아서 예금이자를 지급하고 예대마진을 은행 수익으로 확보하게 된다. 은행에 예금은 ‘남의 돈’이요 곧 부채다. 그런데 은행에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남의 돈’ 내지 부채에 대해 예금보험을 통한 보험까지 들어 있다 보니 문제가 더 커진다.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다루는 데다가 은행이 잘못해 원금이 훼손돼도 제3자가 원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보험이 없으면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경제주체가 보험에 가입한 후 태도가 달라지면서 함부로 행동하게 된다는 ‘모럴해저드’ 문제가 은행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예금자가 은행의 주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이해관계자’라는 점에서 은행은 주인-대리인 문제와 유사한 ‘남의 돈’ 문제에다가 ‘모럴해저드’ 문제까지 겹쳐 있는, 매우 민감한 접근이 필요한 조직이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싸늘해지고 급여체계에 대한 비판은 물론 은행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수수료를 조정하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수익성 확보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은행들은 수많은 내부 문제들로 인한 ‘내우’와 힘든 외부환경으로 인한 ‘외환’에 시달리면서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뿐 아니다. 얼마 전 동양그룹은 주채무계열 제도를 근거로 시행되는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시장에서 기업어음(CP)과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은행 빚을 줄였다가 결국 부도를 내면서 피해자를 양산한 바 있다. 이는 직접금융 또는 금융시장에서 ‘남의 돈’을 함부로 다룬 데에서 발생한 비극이다.그러고 보면 ‘남의 돈’은 엄청난 위험을 지닌 ‘위험물’이다. 잘못 다루면 이를 다루는 사람이 다친다. 금융회사는 ‘위험물 취급 인가기관’이며 모든 금융인은 ‘위험물 취급 인가요원’이다. ‘위험물’은 조심스럽게 다루고 규정대로 다뤄야 한다. 이제 ‘남의 돈’에 대한 인식의 재설정이 필요한 때다. ‘자기 돈’ 다루듯 정성스럽게, ‘위험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요즈음 은행을 위시한 금융회사에 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가 터지면 이미지에 금이 가고 많은 사람의 걱정거리가 된다. 이제 작은 사고란 없다. 모든 사고는 거의 같은 비중으로 금융회사 전체를 강타한다. ‘남의 돈’을 다루는 금융산업 내부의 일대 각성과 아울러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외부의 시선이 필요한 때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