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첫 단추 '官피아'부터 수술하라] 관료 20년·산하기관 10년…정년 때까지 '밥그릇' 챙겨줘

(1) '官피아 공화국' 오명 언제까지

1급직 연령 50대 초중반
1년 후엔 후배 위해 용퇴…협회 등 '낙하산' 내려가

'자리' 놓고 협회 길들이기
"한국선급 표적감사" 소문…힘겨루기에 안전은 뒷전
지난 23일 창립한 한국사무기기산업협회는 올 하반기에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관료를 이사급으로 영입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의 이익단체인 협회들은 대개 과장급 공무원은 이사급, 국·실장은 상근 부회장, 차관이나 차관보는 이사장 등으로 영입한다.

민간부문 자원재활용 업무를 총괄하는 한 사단법인의 이사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환경부 국장직을 마지막으로 관가를 떠난 뒤 국립환경과학원장,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1월 환경산업기술원장 임기를 6개월 앞두고 용퇴한 그는 지금의 사단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기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만큼 다른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환경부 후배 관료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50대 초반에 나와 10년을 전전

한국 사회에 이 같은 ‘관피아(관료+마피아)’ 공화국이 구축된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를 ‘10-10-10 사이클’로 표현하고 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5급인 사무관에 평균 10년, 4급인 서기관에 10년, 그리고 1~3급인 관리관·이사관·부이사관에 10년 등 총 30년을 채우는 직급별 근무 기간을 뜻한다.

문제는 장관이나 차관이 되지 않을 경우 30년을 채우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하급 공무원들이 정년을 채우는 경우는 많지만 고급 관료들은 거의 정년에 도달하지 못한 가운데 옷을 벗어야 한다.지난해 안전행정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른바 고위공무원단(1,2급·고공단)으로 승진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평균 21.2년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남자의 경우 30세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한다고 해도 50대 초반에 고공단으로 올라선다는 얘기다.

실제 정부 부처 내에서도 승진이 느린 편인 기획재정부의 경우 차관과 1급직들의 연령은 대개 50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다. 더욱이 일부 부처는 고질적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1급직은 1년만 한다’는 내부 규율을 작동시키고 있다. 직업공무원의 최고 정점에 오르자마자 그 사람이 지닌 지식과 경험, 네트워크에 관계없이 1년 만에 보따리를 싸야 하는 것이다. 통상관료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는 외국 실무단 사이에서는 “만날 때마다 한국 공무원들의 얼굴이 바뀌어 당혹스럽다”는 하소연까지 나오고 있다.

암묵적으로 정년 60세 보장퇴직한 관료들은 해당 부처와 산하기관·협회가 이심전심으로 챙겨주는 게 오랜 관행이다. 부처에서는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밀려나는 고시 기수 선배를 위해 ‘낙하산’을 내리고, 산하기관이나 협회는 조직 방어와 사업 추진 등 대관업무를 원활히 한다는 전략에서 그 낙하산을 받는다. A부처 B 국장은 “각 부처는 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매개체로 관련 협회를 필요로 하고, 협회는 정책 사업 추진이나 대관업무를 위해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파워를 가진 퇴직 공무원을 영입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요즘 1급 교체 인사를 놓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다. 한두 명을 내보내야 승진인사에 숨통이 트이는데 ‘알선’을 해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다. 사실 그 전부터 인사가 꼬였다. 차관 2명 중 1명이 얼마 전 인사가 끝난 수출입은행장으로 갔어야 하는데 청와대가 다른 사람을 낙점했기 때문이다. 민간으로 내보내는 것도 마땅찮다. 50대 초·중반의 나이면 민간기업들은 대개 최고경영자(CEO)의 연령이다. 더욱이 사업경험이 일천한 공무원들이다. 대관업무 등 기업의 ‘특별한 수요’가 없으면 민간에 안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재부의 한 국장은 “현실적으로 공무원 정년이 보장돼 있는 여건에서 자리도 만들어주지 않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며 “승진제도 개편 등 특단의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지금 같은 인사적체-외부 낙하산 배출 구조를 근절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자리 때문에 표적감사까지이런 상황에서 산하기관이나 협회 자리를 놓고 부처 차원에서 직접 힘을 쓰는 경우도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말 선박 안전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선급에 대한 대대적 감사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이 감사는 길들이기 차원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해 3월 한국선급 회장 선출투표에서 국토해양부 2차관 출신인 주성호 전 해운조합이사장이 현 회장인 전영기 당시 기술지원본부장에 밀렸기 때문이다. 통상 한국선급 회장은 해수부 출신이 맡아왔지만 선거에서 한국선급 내부 출신이 당선되면서 해수부가 ‘표적 감사’에 나섰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였다.

그렇게 자리를 놓고 관료들과 산하기관 및 협회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세월호의 무리한 구조 변경과 안전을 도외시한 출항은 아무도 잡아내지 못했다. 관료집단의 무능과 보신주의를 넘어 가히 ‘관피아(관료+범죄조직인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홍열/심성미/김주완/김우섭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