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5월의 첫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 아픔들
서로 보듬어 일상의 희망 되찾길

이병석 < 국회부의장 lbs@assembly.go.kr >
봄날의 흥취가 농익어 가는 5월의 첫날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오월처럼만 싱그러워라’라고 노래했던 오순화 시인의 ‘오월 찬가’를 떠올리게 된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을 만끽하면서 봄이 완연함을 실감한다.

계절의 찬란함 뒤편에서는 월급쟁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5월은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까지 더해서 쥐구멍에 콕 숨고 싶은 달이다”라고 말한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지난달과 다르지 않은데 챙길 곳은 많다고 푸념들을 쏟아낸다.5월은 한편으로 우리 현대사가 불러온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도 아름다운 꽃이, 민주주의의 소망이 만개했었다. 하지만 18일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국민의 희망이 미처 피기도 전에 꺾였다. 그 후, 쌓여온 과거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탄생했다. 우리 민주주의 역사는 수없이 꺾여 쌓인 꽃들을 지려 밟으며 진보해 왔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14년 5월, 우리는 또 하나의 비극을 보고 있다. 지난달 16일 믿기 어렵고, 믿고 싶지 않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차가운 바닷물이 300여 귀한 생명을 삼켜버렸다. 대한민국의 무능력이, 이 시대에 만연해 있는 이기심이, 이들 생명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을 치르고 있다.

긴 세월을 살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인생은 한쪽으로 보면 끝없는 좌절과 불행의 연속이지만, 다른 쪽을 보면 끝없는 소망과 희망의 연속이다.” 지금 어떤 말로도 서로를 위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4월16일을 ‘안전 국치일’로 삼아 국가 시스템을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 애달픈 수백명의 영혼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이제 5월의 화창함 뒤에 가려진 우울한 마음과 무기력함을 보듬어줄 때다. 서로를 일으켜 세워줄 때다. 그 힘으로 일상에서 희망을 피워내야 한다. 5월의 첫날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의 꽃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보자. 나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과 어르신을 생각해 보자. 마음속으로 간직한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다면 안부 전화라도 드려보자. 이렇듯 작은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간다면, 5월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으로 우리에게 자리할 것이다.

이병석 < 국회부의장 lbs@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