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신기해라…내가 키운 꽃이 여기 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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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 근로자의 날 외국인 노동자 5人 '에버랜드의 휴일'“사모님, 어제 제가 (지지대에) 묶은 델피늄 저기 있어요.”
한강영농조합법인 한행하 사장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주고파"
난생처음 놀이기구 탄 네팔 근로자 "돌아가서도 오래오래 기억할 것"
화창한 1일 오전 10시. 놀이동산이라는 곳에 처음 와봤다는 캄보디아 국적의 짠나 행 씨(33)는 한행하 한강영농조합법인 사장을 ‘사모님’이라 불렀다. 그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포시즌 가든’에서 선명한 보랏빛 꽃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키가 큰 이 꽃은 얇은 나무 지지대에 줄기를 묶어줘야 꽃이 처지지 않는다. 짠나 행 씨는 어제 농장에서 직접 묶은 꽃이 오늘 꽃밭에 심어져 있는 걸 보고 “신기하다”고 말했다.이 꽃은 한강영농조합법인이 이날 새벽 3시에 납품했다. 하루 동안 에버랜드에 들어가는 꽃만 1만5000포기다. 시들어버린 튤립을 교체해야 하는 바쁜 시기다. 보통 매일 1만~1만5000포기씩 꽃을 교체한다. 에버랜드에만 연간 3억원어치를 납품하고, 과천 서울대공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공급하는 것까지 포함한 전체 매출은 20여억원(지난해)이다.
짠나 행 씨는 올해 2월부터 한강영농조합법인에서 4명의 동료 외국인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농장이 에버랜드에 꽃을 심는다는 것을 알고 면접 때 “에버랜드에 갈 수 있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오고 싶어했다. 근로자의 날이자 가정의 달을 맞아 한 사장이 이들과 함께 왔다.
캄보디아에서 온 파잇 램 씨는 21세다. 가는 곳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저 꽃은 베고니아, 이건 피튜니아예요”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허리에 손을 얹고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난생처음 놀이기구를 탔다는 수브라치 퀴랄라 씨(31)는 파도타기 기구를 탄 뒤 “(네팔에) 돌아가서도 오래오래 기억할 거예요”라며 “무서울 것 같았는데 재미있다”고 했다. 놀이기구가 무섭다며 아무것도 안 타던 산드라 수바 씨(29)는 같은 네팔 국적을 가진 비몰라 따망 씨(27)와 손을 잡고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용 기차를 타며 “신난다”고 했다.
한 사장은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주고 놀이기구 하나라도 더 태워주고 싶은데, 이런 걸 경험해본 적이 없어 무서워하니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꽃밭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즐거워하니까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15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과 일해왔다.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신청해 해마다 2~5명씩 채용한다. 꽃 농장인 데다 세탁실, 화장실, 부엌 등이 갖춰진 깨끗한 숙소에 식사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다. 임금은 월 120만원(여)~140만원(남)을 준다. 경력이 쌓이면 10만~20만원씩 올려준다.한 사장은 “일부 농장이나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급여를 주지 않거나 늦게 주는데 이들에겐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며 “임금체불 보증보험과 상해보험, 의료보험, 출국 만기보험 등에도 다 들었다”고 강조했다.
한강영농조합법인은 키우는 꽃의 종류가 300종이나 되고 대량으로 납품할 수 있는 농장(3만3058㎡)도 갖췄다. 한 사장의 수첩에는 2일 하루에만 에버랜드와 서울 종로 삼성생명에 납품해야 할 꽃 목록, 경기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어갈 아이비, 가자니아, 사피니아 등의 꽃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5명의 외국인 근로자는 이날 오후에 꼭 실어 보내야 하는 꽃이 있어 점심 무렵에 에버랜드를 나와야 했다. 한 사장이 “다음에 편안하게 와서 하루 종일 놉시다”라고 말하자 5명은 일제히 “네 사모님”하며 활짝 웃었다.
용인=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