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해 보이는 것에 대박있다"…삼성전자 C랩, 창의경영 '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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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예고 모자…향기분석 스마트폰 앱…시각장애인 자전거‘나이가 들면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는데, 위험을 미리 알 수 있는 기기를 만들면 어떨까.’
2012년 정식 조직으로 출범…최대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완전 자율근무로 창의 발휘…안구 마우스 등 관심 모아
현재 26개 아이디어 진행…'시장선도자' 씨앗 뿌리기
삼성전자 한 직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이 직원은 지난해 아이디어를 회사에 냈고, 1년간 개발할 시간과 예산을 얻었다. ‘뇌졸중 예고 모자’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삼성의료원과의 협업을 통해 뇌파를 분석해 정상 여부를 판별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에 넣는 방안도 추진한다.기상천외한 제품들이 삼성전자에서 하나둘 개발돼 나오고 있다. 임직원의 창의력을 북돋우기 위해 2011년 시작한 ‘크리에이티브랩(C랩)’이 정착하면서 결과물이 속속 나오는 것. C랩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낸 임직원에게 아이디어를 구현할 기회를 준다. 구글의 프로젝트X와 비슷한 형태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가기 위해 작은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창조경영을 위한 작은 씨앗 C랩
삼성전자는 2011년 ‘창의개발연구소’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노키아 타도를 목표로 달리던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폰에 한 방 크게 얻어맞고 갤럭시S로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직후다. 더 이상 군대식 제조 문화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삼성은 ‘창의의 산실’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이식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별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구글의 ‘프로젝트X’가 대표적이다.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이끄는 이 팀은 대기권 바깥까지 치솟은 우주 엘리베이터, 소행성을 끌어와 광물을 채취하는 우주광물 채취, 주인 대신 일하는 로봇 등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시범적으로 4개 아이디어를 뽑아 개발에 들어갔다. 곧이어 속속 선보인 5만원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안구마우스, 3D 센서와 카메라 등을 활용한 시각장애인용 자전거, 태양광으로 충전해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젝터(‘햇빛 영화관’) 등은 사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은 이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판단, 2012년 말 조직개편 때 창의개발센터를 설치하고 C랩 프로젝트를 확대했다.C랩은 공모를 통해 정한다. 창의·혁신성이 심사의 주요 잣대다. 채택된 임직원(팀)은 C랩 프로젝트의 리더가 돼 최대 1년까지 현업에서 벗어나 독립된 근무 공간과 완전 자율근무를 보장받는다. 함께 일할 동료도 연령·직급에 관계없이 뽑을 수 있다. 또 성과를 내면 벤처사업가에 준하는 파격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임직원 30만명의 거대한 조직이 된 삼성전자가 끊임없이 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식 벤처정신을 조직에 이식해야 한다”고 C랩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시장 선도자 되기 위한 갖은 노력C랩 프로젝트는 이제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현재 개발 진행 중인 아이디어가 26건이다. 휴대폰으로 향기를 분석하는 기능,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여기에는 인도 등 해외 연구소에서 낸 2개의 아이디어도 포함돼 있다. 삼성 관계자는 “지금은 작은 씨앗 같은 아이디어지만 향후 삼성전자 전체를 이끌어 갈 신규 사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휴대폰으로 향기를 분석할 수 있다면 산업 현장에서 유해가스를 탐지하고 분석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매년 4~5월 전사 공모전을 열어 아이디어를 선정하는데, 올해 공모전에는 2000여명이 무려 1500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500여건에서 3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수시로 아이디어를 받아 평가할 계획이다. 공모전을 주관하는 창의개발센터의 김형린 차장은 “다소 엉뚱하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아이디어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C랩 외에도 창조 경영에 열심이다. 실리콘밸리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OIC) 두 곳을 짓고 현지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인문계 전공자를 뽑아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만드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도 도입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창조 경영’을 화두로 던진 것은 이미 7년 전이다. 2006년 이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시장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창조적 경영을 해나가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하려면 시스템과 인력이 창조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