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 아닌 창조…"마음으로 그렸죠"

고영훈 씨 가나아트 개인전
‘제너레이션3’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고영훈 씨.
국내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화가 고영훈 씨가 오는 6월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있음에의 경의’를 연다. 1970년대 초반 극사실주의 회화의 문을 연 그의 작품은 컬렉터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호당 작품 값이 비싼 작가 중 한 명이다.

8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에 나온 작품에서는 종전과 다른 변화가 읽혀진다. 극사실적인 작품들과 함께 흐릿하게 그려진 작품이 한 짝을 이뤄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닮게 그리는 데 관심이 없다”며 사실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구상과 추상은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는 게 아니며 허상도 사실이 될 수 있다”며 자신의 극사실적인 작업은 “대상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질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점도 눈에 띈다. 우주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은 언젠가 소멸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다시 생성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태도다. 이번 전시에 나온 신작 40여점에는 그런 작가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사발’과 ‘접시’에서 두 개의 사발 중 왼쪽은 흐릿하게 오른쪽은 선명하게 묘사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소멸과 생성의 과정은 뚜렷하게 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과 작가의 자화상 사이에 흐릿한 사람 형상을 배치한 3폭짜리 ‘제너레이션’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은 이제 눈으로 보는 그림에서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 됐다. 이번 전시가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02)720-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