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가개조, 규제생태계 척결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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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월호 참사 막으려면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고,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정말 그 애통함과 분노는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까지 우리는 슬픔과 분노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에 잘못이 있었는지를 밝혀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그 슬픔과 분노를 승화시켜 대한민국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가족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일 것이다.
원칙준수·책임완수 기본 지키고
규제 통한 정부개입 떨쳐버려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이번 참사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대한민국의 뒷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평형수(平衡水)를 줄여가면서까지 과적을 한 해운사, 이 사실을 무시한 안전 관리자, 이를 눈감아준 감독기관과 공무원,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 사고 후 무능과 무기력을 보여준 행정,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시민단체….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대한민국의 모습들이다.사실 세월호 참사는 관련돼 있는 사람들이 각자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기본적인 도덕률만 지켰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적하지 않았더라면, 안전관리를 철저히 했더라면, 공무원들이 제대로 감독했더라면, 그리고 사고 후 적어도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지키며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구출하는 데 최선을 다했더라면….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인 도덕률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이번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과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저축은행 사태 등에서도 그랬다. 이런 일련의 사고들은 도덕률 부재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국민들의 도덕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성원의 도덕심이 실제로 국가의 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국가다운 국가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개혁과 함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국민생활과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정부권력이 큰 체제 하에서는 국민의식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심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면 정부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령이나 규제를 원하는 사람들은 정치인과 정부 관료에게 로비를 해 보조금을 타낸다든지, 경쟁을 피하는 조치를 부탁한다. 한편 규제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나 기업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로비한다. 규제가 많고 강할수록 이익이 크기 때문에 정치인과 관료들은 규제를 더욱 강화한다. 점점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자원배분이 혈연·학연·지연에 따라 이뤄지는 패거리 문화가 생긴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피아’가 판을 치는 공무원공화국이 된다. 편법이 난무하고 무사안일, 적당주의, 형식주의가 팽배해진다. 이런 적폐(積弊)가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저축은행 사태, 그리고 이번 세월호 참사를 낳았다.
물론 사고의 재발 방지와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이번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무거운 벌금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국민의식 개혁과 함께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한 지금의 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정부권력을 제한해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즉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경쟁을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가 세월호와 같은 또 다른 참사를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드러나 있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정부의 통제가 심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세월호’가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 무엇이고 그에 맞춰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개혁해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