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소득하위 77%'까지 준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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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고무줄 잣대' 논란기초연금 지급 기준이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소득 하위 70%가 아니라 ‘77%’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초노령연금 수급률이 매년 떨어져온 가운데 정부가 ‘노인 70%에게 연금을 준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득인정액 기준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신청않는 사람 많을 것" 짐작…대상 40만명 늘려
문제는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기초연금 지급 기준을 현행 기초노령연금 기준과 동일하게 책정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소득 하위 70%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71~77%’, 다시 말해 소득 상위 ‘23~29%’에 속하는 40만여명의 노인이 기초연금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빠듯한 재원으로 복지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정작 부실한 복지전달체계는 그대로 놔둔 채 법이 정해놓은 기준을 제멋대로 늘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최근 기초연금 지급 대상으로 발표된 소득인정액 기준은 단독가구 월 87만원, 부부가구는 132만9000원 미만이다. 소득인정액은 명목상 소득이 아니라 개인의 소득과 재산을 일정 부분 공제한 뒤 소득환산율로 다시 계산한 금액으로 정부가 제시한 금액 기준은 소득 하위 76.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008년 71%에 불과하던 소득 하위 기준은 불과 6년 만에 5.7%포인트나 뛰어올랐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것은 기초노령연금의 수급률이 매년 하락해왔기 때문이다.
복지부 "70% 채우려면 불가피"…전문가 "연금 전달체계부터 손질해야"만 65세 이상 노인 70%에 대한 지급을 목표로 했던 수급률은 △2009년 68.9% △2010년 67.7% △2011년 67% △2012년 65.8%에 이어 작년에는 64.7%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연금의 존재를 모르거나 거동이 불편해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본인이 신청하지 않을 경우 정부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이 2008년 도입된 점을 감안하면 수급자를 탓하는 복지부의 해명은 궁색하다는 지적이다.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가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해 수급률 저조를 질타하는 일이 잦아지자 수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득인정액 기준선을 상향하는 악순환이 빚어진 것이다. 법정 비율(70%)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수급 대상에 올려놨다는 얘기다. 이 바람에 소득하위 70%에 속하면서도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소득하위 70%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 가운데 올해부터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은 최대 40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소득하위 70%와 77%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복 지부도 이런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령상의 맹점도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유주헌 복지부 기초노령연금과장은 “소득하위 70~77%에 있는 노인 중에 연금을 받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기초연금의 취지나 기초연금법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복지부에 따르면 기초(노령)연금법뿐 아니라 시행령, 시행규칙 어디에도 ‘소득하위 70%’라는 규정은 없다. 기초(노령)연금 시행령이 명시하고 있는 것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사람이 100분의 70 수준이 되도록 한다’는 점이다. 즉 전체 노인 중 70%만 받으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소득하위 70%일 필요는 없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소득하위 70%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 기초연금 도입을 둘러싼 숱한 복지 논쟁은 방향을 잘못 잡은 소모적 논란이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게다가 앞으로 수급률이 계속 떨어질 경우 소득하위 80%, 90% 수준으로도 소득인정액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기초연금을 논의한 행복연금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준을 고무줄처럼 조정할 수 있다면 당초 기준액 설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정부가 ‘노인의 70%에게 지급한다’는 정책 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선별적 복지체계의 골격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원기/고은이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