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佛心의 나라, 2300기 불탑이 지친 심신 달래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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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3
미얀마 바간‘불탑의 나라’ 미얀마에는 영적인 힘이 흐른다. 국민의 약 90%가 불교 신자인 까닭에 한반도 3배 크기의 너른 땅에는 불탑이 여기저기 세워졌다. 거대한 몇몇 불탑은 ‘지각변동과 함께 융기한 자연물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경이롭다. 바간, 양곤, 헤호 등 미얀마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불탑은 오도카니 서서 외지인을 반긴다.

수풀을 비집고 선 바간의 불탑들은 묵묵히 한자리를 지킨 고목(古木)처럼 의연하고 고고하다. 여행자가 일부러 바간까지 찾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셰산도 파고다에 오르기 위해서다. 5층짜리 건물 높이와 맞먹을 법한 셰산도 파고다는 멀리서 감상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가까이 다가가야 불탑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탑을 맨발로 엉금엉금 올라간다. 후들후들 흔들리는 다리를 다독이며 불탑에 오르면 잠들어 있던 바간이 기지개를 켠다. 붉은 토양을 뚫고 솟아난 바간의 불탑에선 오랜 시간 억압받아온 미얀마의 슬픔이 아련하게 묻어난다.
불탑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사람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한동안 말을 아낀다. 발 바로 아래에는세월의 결이 묻어나는 불탑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아찔하면서도 뭉클한 풍경 앞에 ‘삶은 번뇌의 연속’이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동안 많은 것을 탐하며 너무 쉽게 화를 내며 살았구나, 한 치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구나.’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를 몸으로 이해하는 시간이다. 셰산도 파고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리는 하얗게 방전되고 마음은 텅 비기 시작한다.바간에는 셰산도 파고다 외에도 셰지곤 파고다, 아난다 파고다, 탓빈뉴 사원 등 다양한 불교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도 부처의 앞머리뼈와 모조 치아 사리가 봉안된 셰지곤 파고다는 건축미가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파고다의 황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멀리서 바라보면 불탑 자체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느껴진다.

바간을 떠나 양곤으로 넘어오면 풍경이 확연하게 바뀐다. 한창 발전 중인 도시답게 양곤은 고즈넉한 바간에 비해 번잡하다. 바간이 고대사의 목격자라면 양곤은 미얀마 근현대사의 산실이다. 2005년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도를 양곤에서 핀마나로 옮기고 이듬해 도시 이름을 아예 네피도로 바꿨다.졸지에 수도의지위는잃었지만 양곤은 여전히미얀마의 정신적인 수도이자 한국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신흥 시장이다.셰다곤 파고다는 바간의 불탑과 달리 도심 가까이 들어서 있다. 높이 약 100m에 달하는 이 불탑은 60t이 넘는 황금으로 뒤덮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농후한 황금빛을 뿜어낸다. 불탑의 꼭대기에는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사파이어, 루비 등 온갖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셰다곤 파고다는 해질 무렵이나 아예 해가 진 캄캄한 밤에 찾는 게 좋다. 어둠이 내리면 거대한 불탑 아래로 촛불이 군데군데 처연하게 켜지고 애달픈 미얀마인의 기도 소리가 공기를 가득 메운다. 불탑을 한 바퀴 천천히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독이거나, 바닥에 철퍼덕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기 좋다. 이곳에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자연스럽다.
소수민족의 젖줄인 인레호수를 보지 않고 미얀마 여행을 끝낼 순 없다. 양곤에서 국내선을 타고 헤호로 날아가면 인레 호수로 가는 길이 나온다. 갠지스강의 신성함과 메콩강의 건강함을 동시에 물려받기라도 한 듯 인레호수는 오묘하게 요동친다. 길이 22㎞, 폭 11㎞에 달하는 인레호수는 인타족, 샨족 등 미얀마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발로 노를 젓고 통발을 내려 물고기를 잡는 인타족의 몸짓은 더없이 아름답다. ‘호수의 아들’인 이들에게 인레호수는 곧 집이고 학교며 일용할 양식을 얻는 텃밭이다.미얀마인이 뿌리 내리고 사는 곳인데 불탑이 없을 리 없다. 인레호수의 대표 명소는 ‘점프하는 고양이 사원(Jumping Cat Monastery)’과 파웅도우 파고다다. 이름부터 독특한 ‘점프하는 고양이 사원’은 스님의 지시에 따라 후프를 뛰어 넘는 고양이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현재 쇼를 벌이는 고양이는 없고, 벌러덩 누워 주인 행세를 하는 고양이만이 사원을 점령하고 있다. 인레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파웅도우 파고다는 축구공을 닮은 동그란 5개의 불상을 소장 중이다.
구명주 여행작가 editor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