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율 5년만에 최악…기업 "땡처리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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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현대차 26조 쌓여
생산·고용감축 악순환 우려
원高로 수출 주춤…세월호 쇼크 겹쳐
경기 회복돼도 바로 생산확대 어려워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재고율(제조업의 출하량에 대한 재고량 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2009년 1월(126.4%) 이후 5년2개월 만의 최고치다.
특정 기간에 100개 제품이 출하됐다면 그 시점의 총 재고는 121개라는 얘기다. 이 같은 양상은 통계청의 선행지수 중 하나인 재고순환지표(출하 증가율에서 재고 증가율을 뺀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월 -0.2%포인트였던 이 수치는 3월 -0.5%포인트로 확대됐다. 재고가 쌓이는 속도가 출하되는 속도보다 빨라졌다는 의미다.한국경제신문이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의 재고 자산을 취재한 결과도 이 같은 흐름과 일치한다. 이들 기업의 재고는 2010년 38조3255억원에서 지난해 48조1097억원으로 3년 사이에 9조7842억원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로 보면 2012년 1.8%에서 지난해 4%로 늘었다.
한국은행이 국가 전체 재고를 산출한 지난해 재고 증가율이 0.8%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재고 증가율이 훨씬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김승철 한은 지출국민소득팀장은 “통상 경제 규모가 커지면 원자재-중간재-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재고자산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지만 회계상 완제품만 재고로 보는 통계청의 통계를 보면 산업현장의 실상을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총자산 대비 재고자산 비중은 8.9%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2009년(8.7%)보다도 0.2%포인트 높았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전년 대비 재고 증가율도 4.4%로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3.3%)보다 높았다.
이 같은 양상이 빚어지는 일차적 요인은 제품 출하량 증가세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출하 증가율(전월비 기준)은 2009년 2월 6.9%에서 지난 3월 1.3%로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15개월 가운데 절반 이상인 8개월은 전월 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백근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이에 대해 “기업들의 생산 및 출하가 국내외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수출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도 아직은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이 재고가 쌓이는 배경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수출 증가율(전년 기준)은 2.1%에 불과했다. 2001~2012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이 9.8%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성장세가 확연히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 같은 수출 증가 탄력성이 사라지면서 기업들의 재고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 부문의 소매판매액 증가율도 지난 1월 2.4% 반짝 오른 것을 제외하고 2011년 3월(3.4%) 이후 2%를 넘은 적이 없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통상 경기가 좋지 않으면 기업들이 할인판매 등을 통해 재고를 소진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심리가 워낙 위축돼 그런 방법도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 중견 소비재 기업의 대표는 “시쳇말로 ‘땡처리’를 하려 해도 이미 2차, 3차 할인시장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고부담이 향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의 재고 증가는 협력·하청업체에 대한 주문 감소로 이어져 소득과 고용여건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 같은 재고자산을 안고 있으면 나중에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가더라도 곧장 생산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