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연해주의 발해유적

발해유적 남은 연해주서 만난 할머니
무조건적 신뢰와 기쁨이 넘치던 순간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
두만강 건너 북쪽의 러시아 연해주는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옛터다. 특히 동해를 이용해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발해는 연해주에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다.

연해주의 발해 유적은 대부분 사람의 발길이 드문 자연환경 속에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높이가 10m에 이르는 토성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천년의 시간이 멈춰 있던 것처럼 장대한 성벽의 면모를 바라볼 수 있고, 숲속에서는 땅을 파지 않아도 1000년 전 발해국 사람들의 집 자리 윤곽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발해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발해의 야외 유적지 박물관(Site Museum) 같은 곳이 연해주인 것이다.연해주의 발해 유적이 우리에게 공개된 것은 1990년대 초 소비에트연방 정부가 무너지고 군사보호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서방 세계에 개방되면서부터였다. 1992년 러시아에 진출했던 한 기업의 지원을 받아 연해주 발해 유적 조사단이 구성돼 우리의 연구자들이 연해주에 남아 있는 발해 유적지에 첫발을 들여놓게 됐다.

대자연의 기운에 휩싸여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을 직접 바라보고 탐색하는 일은 한 순간 한 장면이 모두 감동이었다.

연해주 유적조사 중 완만한 구릉이 한없이 펼쳐져 지평선과 만나는 연해주 미하일로프카 지방에 있는 아브라모프카의 5~6세기 주거지를 발굴 조사하던 때의 일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가 져가는 어스름 저녁시간에 마을로 내려와 숙소를 향하는 길에서 우연히 동양인 할머니를 만났다. 1937년 이후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연해주 일대는 서양인이 많은, 동양 속의 서양이었기에 1990년대 초반에는 동양인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우리는 길에서 동양인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더욱이 할머니는 청년기에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다가 노년에 러시아 정부가 수립되면서 다시 동쪽으로 대륙을 횡단해 고향을 찾은 분이었다. 또 고구려, 발해의 거점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생활하다가 동해를 볼 수 있는 한국 역사의 땅으로 돌아온 역사의 순례자이기도 했다. 역사 순례자와 역사 흔적 탐색자들의 만남에는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신뢰와 배려, 기쁨만이 있었다. 그 역사의 현장과 현장인들은 그곳을 문화의 차이도, 이념의 다름도 없는 따뜻한 정만 가득한 자리로 만들었다.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