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러 '新밀월'…4000억弗 가스 공급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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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푸틴, 10년 끌어온 협상 진통 끝 타결중국과 러시아가 10년 넘게 끌어온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협상을 21일(현지시간) 극적으로 타결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의 알렉세이 밀레르 회장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저우지핑 회장은 이날 중국 상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가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내용을 담은 계약서에 공동 서명했다. 이날 협상은 밤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불발된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가 새벽 4시께 극적 타결됐다.
美 견제 위한 군사·안보동맹으로 확대 가능성
EU "천연가스 공급 약속 이행해야" 전전긍긍
계약에 따라 2018년부터 30년 동안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는 중국 가스 소비량의 23%, 가즈프롬 전체 수출량의 16%로 가즈프롬 25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계약 금액은 4000억달러(약 410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미국 견제 등 공통 분모 작용
시 주석이 이날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아시아 지역의 안보 협력기구를 만들 것을 공식 제안한 데 이어 ‘가스 동맹’까지 타결되면서 미국으로부터 견제받고 있는 양국 간 ‘신(新) 밀월’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정부는 2004년부터 천연가스 공급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여왔지만 공급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중국은 러시아에 유럽 공급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국제시장 가격을 고수하는 등 줄다리기를 계속했다.푸틴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길에 전격 합의가 이뤄진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으로선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고 풀이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번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서방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왔다. 유럽과 미국이 금수조치, 금융 규제 등으로 경제적 숨통을 조이면서 올 들어 러시아 증시와 루블화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에너지 수출에 나라 살림을 의존하는 러시아로서는 새 시장 개척이 절실했고, 중국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택했다.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최고경영자(CEO)는 “가즈프롬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계약이 드디어 마무리됐다” 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절묘한 기회였다. 스모그 등 석탄연료 사용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천연가스 도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력한 동맹국이 필요했다.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군사·안보 동맹 확장되나
중국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자국을 견제해온 미국을 역으로 견제하면서 아시아 안보 맹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외신들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안보,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미국과 유럽을 긴장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은 현재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32%, 원유의 3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가즈프롬이 유럽과 체결한 가스공급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싱크탱크 전략기술분석센터의 바실리 카신은 “향후 두 나라가 군사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