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두달 새 5조 급증…정기예금 ABCP '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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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보다 금리 더 높은▶마켓인사이트 5월 22일 오전 5시16분
위안화 ABCP가 절반 이상
"짧은 기간에 고수익" 쏠림 심화
중국 금융 불안 커질 때 급격한 예금 인출 사태 우려
정기예금을 기초자산으로 활용하는 ‘정기예금 유동화증권’ 발행이 지난달부터 폭증세를 보이면서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올 경우 동시다발적인 예금 인출로 인한 은행 유동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규제 풀리자 폭증세로 돌변
2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은행 정기예금을 기초로 만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이달 들어 12거래일 동안 1조8600억원 발행됐다. 지난달 3조2100억원이 발행된 것을 감안하면 두 달도 채 안 돼 5조원 넘게 팔려 나간 것이다.
특히 공상·건설·교통·농업 등 중국은행들의 서울지점이 발행한 정기예금 ABCP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 은행 정기예금보다 최고 0.5%포인트 정도 높은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은행 정기예금 ABCP 발행 비중은 지난달엔 46%, 이달엔 66%를 차지했다.정기예금 유동화증권은 작년부터 발행이 급증했다. 지난해만 10조8000억원이 발행되면서 잔액은 작년 말 21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증권사와 투자자 요구가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결과다. 증권사들은 우대금리로 정기예금을 받은 뒤 이를 ABCP로 되팔면 발행금액의 0.1%포인트 안팎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기관투자가와 거액자산가들은 이 ABCP가 편입된 1~6개월짜리 신탁상품에 가입해 단기로 돈을 굴리면서도 1년 예금과 맞먹는 상대적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시중 자금의 급격한 쏠림 현상을 우려한 금융감독원은 작년 말 유동화증권 기초자산을 목적으로 한 예금 취급을 자제하도록 은행권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올 1~3월 정기예금 ABCP 발행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이 규제가 풀리자 다시 정기예금 유동화증권 발행이 급증세로 돌아섰다는 설명이다.
◆커지는 쏠림 우려 목소리증권업계는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정기예금 ABCP는 작년 신규 발행액을 추월해 연내 발행잔액이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해 보이는 은행 정기예금 관련 상품일지라도 과도한 발행은 예기치 못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상무는 “정기예금 ABCP는 급격한 예금 인출 사태가 없을 것이란 전제로 발행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치면 정기예금 ABCP는 클레이모어(대인지뢰)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바젤Ⅲ가 최근 은행의 단기적인 도매자금 조달을 제한하려는 것도 이런 위험 인식에 근거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행 정기예금 비중이 지나치게 과도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중국의 불투명한 금융시스템 문제가 정기예금 ABCP 투자자 등에게 예기치 못한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