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가치 안정 '평형수' 역할하는 중앙銀…정치권력 '과적'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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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35) 버냉키의 고백과 중앙銀의 통화 정책
"중앙은행이 잘못했다" 버냉키, 대공황 긴축정책 비판
2008년 위기에 양적완화 실시…글로벌 금융위기는 '진행 중'
정치 과정서 만들어진 중앙銀, 통화정책 수행 때 한계 가져
수요 예측하는 시스템 없어…준칙 따라 통화정책 펼쳐야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


가장 바람직한 통화정책은 화폐 수요에 맞게 화폐를 공급하는 일이다. 그래야 화폐가치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화폐가치가 안정돼야 하는 까닭은 시장의 원활한 작동과 경제안정을 위해서다. 시장경제는 가격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가격 시스템이 왜곡되면 시장이 왜곡돼 많은 경제 혼란과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 일어난다. 가격을 규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화폐가치 불안정은 가격규제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화폐로 표시되기 때문에 화폐가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가격 시스템에 왜곡이 생기고, 그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고 경제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화폐가치 불안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규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특정 재화에 대한 가격규제는 그 분야에 중점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화폐가치 불안정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통화팽창으로 화폐가치가 불안정해지면 사람들은 자기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대가로 주는 화폐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통화팽창은 화폐가치를 불안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격을 왜곡시킨다. 통화팽창의 파급 경로는 일률적이 아니라 비대칭적이어서 어떤 재화의 가격은 크게 상승하고, 어떤 재화의 가격은 작게 상승한다. 이런 상대가격의 왜곡은 구성원들의 소득과 부의 격차를 일으킨다. 또한 시장참가자들의 경제적 계산을 왜곡시켜 시장과정을 방해한다. 따라서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화폐가치 안정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확보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은 정치적 압력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갖고 있는 국가의 화폐가치가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독립성이 매우 강했던 과거 독일의 분데스방크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확보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은 화폐 수요의 변화에 맞게 화폐를 공급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화폐 수요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보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중앙은행 시스템에서는 화폐불균형 문제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화폐 공급이 화폐 수요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이뤄져 화폐균형이 일어나는 제도는 자유금융의 민간화폐제도다. 민간화폐제도는 민간은행에 의해 화폐가 경쟁적으로 발행되는 화폐금융제도다(‘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31)’ 참조). 자유금융의 민간화폐제도는 성공적으로 실시됐던 역사적 경험도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민간화폐제도는 사실상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민간화폐제도가 실행되기 어렵다면 현 중앙은행체제에서 화폐가치 안정과 경제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준칙에 의한 통화정책이다. 프리드먼이 제안한 것도 준칙에 의한 통화 공급이었지 헬리콥터로 돈을 마구 뿌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