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법 개정] 빚 탕감 받고 경영권 되찾기…'유병언式 기업 재건' 막는다

정부, 통합도산법 개정 추진

사주가 부실원인 제공 땐 기업 차명인수 금지하기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제도를 악용해 빚만 탕감받고 경영권은 도로 가져가는 ‘유병언식 기업 재건’이 불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된다. 법무부는 사주가 부실의 원인을 제공해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이 사주가 빚을 탕감받은 뒤 차명으로 기업을 다시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26일 발표했다. 차명인수 시도가 확인되면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관계인 집회에 상정하지 않거나 불인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기존 사주가 법정관리의 원인을 제공해놓고도 회생절차를 통해 빚만 탕감받은 뒤 기업을 다시 인수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사주가 A기업과 B기업 두 개를 갖고 있는 경우, 법정관리를 통해 A기업의 빚을 없앤 뒤 B기업이 다시 인수하게 하는 식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도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2000억원에 달하는 채무를 탕감받고 세모그룹을 사실상 재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차명인수 시도가 의심되면 법원은 해당 회사나 관리인 또는 이해관계인에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된다. 차명인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수 희망자가 사주와 혈연관계인지, 거래·지분관계에 비춰 사주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지, 사주를 통해 인수합병 자금을 마련했는지 등을 두루 살펴보게 된다.

법원에서 확인 자료 제출 명령을 받은 사람이 허위 자료를 내거나 명령을 묵살하는 경우 ‘사기회생죄’로 처벌토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현행 통합도산법에도 사기회생죄가 있지만 법정관리 기업의 재산을 은닉했을 때 처벌하는 내용이고 차명인수 규제 조항은 없다. 사주가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질러 회사에 피해를 입혔을 때는 아예 회생계획안을 처리하지 않도록 해 차명인수뿐만 아니라 실명인수도 원천 차단토록 했다.

법원 역시 차명인수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파산부 준칙 개정안을 최근 내놨다. 법원 대책은 사법부 내부 준칙을 바꾼다는 내용이고 법무부 대책은 법안을 바꾼다는 점에서 다를 뿐 내용은 거의 같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 자체적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민간 전문가 위원회 검토까지 모두 거쳤다”며 “다음달 중으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