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손에 잡히는 국민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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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와 행복감은 반비례 관계6·4 지방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기대감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지만, 여전히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머뭇거려지는 시절이다. 이런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감이 순리(順理)일 것이기에, 국민행복시대를 열기로 했던 그 약속을 되새겨봄은 나름 의미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선언적 국민행복 약속만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 의한 불평등 완화책을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
최근 영국의 전염병학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이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보건기구(WHO) 등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집중분석한 연구 결과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윌킨슨과 피켓은 데이터 신뢰도가 높은 23개 국가를 선정한 뒤 국가별 상위 20%의 소유 자산과 하위 20%의 소유 자산을 비교함으로써 불평등 정도가 낮은 국가군과 높은 국가군으로 범주화했다. 상대적으로 불평등 정도가 높은 국가로는 영국 포르투갈 미국 등이 포함됐고, 상대적으로 평등 정도가 높은 국가군으로는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선정됐다.분석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상위 및 하위 20%의 격차가 작은 국가일수록 삶의 질을 측정하는 모든 지표상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 예로 불평등 국가군과 평등 국가군을 비교해보면 살인 발생률은 전자가 후자의 10배,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대 임신율은 8배, 그리고 정신병 발병률은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비만율, 강력범죄 및 폭력 발생률, 약물 남용률, 자살률, 신생아 사망률 등에서도 불평등 국가군이 평등 국가군보다 높게 나타난 반면 학업 성취도 및 평균 기대수명은 거꾸로 낮게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한다’는 문항에 대해선 빈부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고, 강간 및 성폭행, 아동 폭력 비율은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한데 이들의 발견에 주목하는 이유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빈곤층이 두텁고, 빈곤층일수록 부유층보다 다양한 사회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상식을 통계 수치로 확인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동일한 중류층이라 할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확대되면 자신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고, 자신의 가족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느끼는 확률이 증가하는 동시에, 지역사회를 향한 신뢰도가 눈에 띄게 하락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있다.
실제로 격차가 큰 사회의 소득 6만달러 가구는 격차가 낮은 사회의 소득 6만달러 가구와 비교해볼 때 사망률, 정신건강 등과 관련된 대부분의 지표가 부정적으로 나타난 반면 삶의 질이나 행복도와 관련된 지표는 낮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의 신생아 사망률이 스웨덴의 신생아 사망률보다 모든 직업군에서 일관성 있게 높게 나타났음은 이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 내에서도 버몬트, 뉴햄프셔, 미네소타, 노스다코타 등 빈부 격차가 낮은 주(州)의 경우는 불평등 정도가 높은 텍사스나 루이지애나 주와 비교해볼 때 10대 임신율, 마약 복용률, 고등학교 중퇴율, 살인율 모두 낮게 나타났음은 물론이다.윌킨슨과 피켓의 연구 결과가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명백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중산층 비율의 급격한 감소를 경험해왔다. 이것은 곧바로 지속적인 불평등의 심화로 연결됐고, 가족 수준의 계층 하강이동과 더불어 개인 수준의 삶의 질 하락을 야기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엔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노와 좌절, 그리고 무력함을 경험하며 행복은 신기루였음을 실감했음에랴.
이제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너무 추상적이어서 현실적이지 못한 정부의 약속은 사절한다. 국민행복이 사회적 불평등과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확인하는 노력처럼 우리네도 신뢰할 만한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진정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국민행복이 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지표의 개선을 보고 싶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