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훈풍' 탄 日기업들, 자금조달 봇물

미쓰이부동산 32년 만에 유상증자…도레이 1000억엔 규모 CB 발행

1분기 설비투자도 4.9% 증가
일본 기업들이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을 통한 자금조달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엔저로 경영 환경이 좋아진 데다 장기간 이어진 디플레이션(경기침체에 따른 물가하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일본 기업들이 투자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진 점도 증시를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을 부추기고 있다.

◆20~30년 만에 자금 조달 나선 기업들미쓰이부동산은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 3245억엔의 자금을 조달한다고 지난 27일 장마감 후 발표했다. 이 회사가 공모를 통한 증자에 나선 것은 1982년 이후 32년 만이다. 미쓰이부동산은 조달한 자금을 도쿄 니혼바시 등 도심부의 부동산 재개발에 쓸 예정이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올 상반기 도쿄 오피스빌딩 임대료지수(전망치)가 4년 반 만에 최고를 기록하는 등 훈풍을 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쓰이부동산처럼 증시에서 신규 자금을 마련하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고베제강소도 24년 만에 유상증자 공모에 나선다. 일본 내 철강사업 강화와 해외 공장 건설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터넷 정보기술(IT) 업체 한 곳도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CB를 통한 자금 조달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화학섬유회사 도레이는 탄소섬유 설비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7년 만에 1000억엔 규모의 CB를 발행하기로 했다. 미쓰이상선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구입을 위해 해외에서 5억달러 규모의 CB를 발행한다.◆투자 증가 기대감 고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업 자금조달이 투자로 이어져 이익을 늘리는 선순환으로 연결될지가 관심”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자본시장 정보업체인 I-N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유상증자 공모 규모는 1조8000억엔으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증자가 급증했던 2010년에는 못 미쳤지만 2011년을 바닥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이토 게이이치 SMBC닛코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도 수익 확대를 위해 증자에 나서는 기업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미쓰이부동산 증자 규모만 해도 지난해 전체의 18%에 달한다. 시중 유동성도 풍부한 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21일 금융정책회의에서 본원통화 공급을 연간 60조~70조엔씩 늘린다는 기존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추이를 볼 때 설비투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야마다전기처럼 기존 차입금 상환을 위한 CB 발행도 있지만 대부분 조달 목적을 ‘투자’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1분기 일본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했다. 설비투자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3월 기계수주도 9367억엔으로 전달보다 19.1% 급증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