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직업 보호' 캘리코 수입 금지…정작 산업혁명 이끈 건 면직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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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36) 1722년 英 캘리코法과 보호무역

영국과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으로 부상한 데에는 교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은 해외 진출과 교역에 적극적이었으며, 교역을 통한 변화는 산업혁명을 촉진시키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도 19세기 유럽과의 활발한 교역이 자본축적과 성장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에서 실행됐던 보호무역정책으로 인해 교역의 역할은 여전히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먼저 영국의 경우를 보자. 최초의 대영제국 총리 로버트 월폴과 그의 계승자들의 모직 제조업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모직공업의 성장을 가져왔고,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논의가 있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의 대표적인 보호무역정책으로 거론되는 것은 1722년 제정된 캘리코법이다. 캘리코는 인도가 유럽으로 수출하던 대표적인 면직물로, 캘리코법은 면직물 수입뿐만 아니라 착용과 사용까지 금지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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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코법에서 보듯이 영국에서 중상주의적인 보호무역 조치는 이익집단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이뤄지곤 했다. 그러나 영국은 식민지 개척과 자유무역을 통해 교역 확대를 추구하는 국가였다. 또한 교역 확대로 나타난 새로운 수요와 생산 유인이 산업혁명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호무역이 미국을 세계 최대의 산업국가로 만들었다는 논의는 당시 나타난 현상만 놓고 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미국은 19세기 내내 경제성장을 거듭한 끝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에서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산업국가가 됐다. 특히 19세기 후반 철강산업과 면방직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발달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의 관세는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높은 수준이었고, 특히 남북전쟁 이후부터는 보호주의적 고율의 관세가 부과됐다. 고율의 보호관세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속됐고, 같은 기간 미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뤘다. 따라서 미국 경제의 부상은 일견 보호무역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그러나 19세기의 관세 수준을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19세기 내내 미국 연방정부는 세 수입을 주로 관세에 의존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관세는 재정수입의 수단이었다. 특히 남북전쟁 발발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계기가 됐다. 막대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재정수입 증대의 필요성에서다. 실제 연방의회는 1861~62년에 관세를 두 배 이상 올렸다. 이와 같은 고율의 관세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지속됐다. 그 원인은 관련 이익집단의 로비 혹은 정치적 압력에 있었다. 고율의 관세를 요구한 이익집단은 주로 북동부의 농민들, 모직물 제조업자 등 국제 경쟁력이 없는 산업의 종사자들이었다. 어쨌든 미국의 산업들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고율의 관세를 통해 수입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고율의 관세를 통한 보호가 미국의 산업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부정적이다.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던 이 시기 철강, 면직공업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 경쟁에 위협받지 않았다.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고율 관세에 의한 산업 보호가 미국 경제 성장과 후생 증대에 기여했다는 경험적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19세기 미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보호무역 덕이 아니라 특허제도를 포함한 사유재산권 보호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를 근간으로 생산요소의 원활한 공급, 영토 확장에 따른 국내시장의 지속적 확대 등의 요인들이 결합돼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원근 <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