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화증권 사장의 틀 깨기 실험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매도 의견’ 리포트가 이슈다. 매도 의견을 받은 기업은 리포트를 낸 증권사에 통상 ‘협박’을 한다. 거래를 끊겠다며 목을 조른다. ‘을’ 입장인 증권사는 일종의 ‘자체 검열’을 하게 되고, 매도 리포트는 자연스럽게 설 땅을 잃는다.

이런 현실을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화는 한화투자증권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 리포트를 최근 과감히 써 화제가 됐다.개인적 결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애널리스트가 전해준 말이다. “사장이 매도 의견을 안 낼거면 회사를 관두라고 할 정도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는데, 그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중간에 낀 애널리스트들이 죽을 맛이다.”

매도 리포트 10% 주문

작년 한화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한 주진형 씨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 사장은 ‘리포트의 10%는 매도 의견을 내라’는 엄명을 내렸다.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판매도 중단시켰다. 지수 등락률의 두 배로 오르내리는 레버리지 ETF는 하루 지수가 5% 떨어지고 다음날 5% 오르더라도 투자자가 손실을 보게 된다. 요즘처럼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장에선 고객에게 손실만 가져다줄 뿐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조치도 있다.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다한 거래를 하는 일명 과당매매(churning)에 대한 대응이다. 고객이 투자를 맡긴 자산에 대한 과당매매는 국내에선 형사처벌 근거조차 없다. 증권사와 투자자 간 끊이지 않는 민사 분쟁의 불씨인데도 말이다.

한화는 이를 ‘비건전 매매’로 이름 짓고, 내부감시를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오프라인 주문 비율 70%, 맡긴 주식 수의 3배 거래 등 기준을 넘길 때 비건전 매매로 판단한다. 고객의 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기준을 어기면 서비스 중지 등 결정을 내린다.신뢰 회복위한 자기파괴

한화 사례를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가 있다. 업계를 리드하는 증권사가 아닌데도 이런 시도만큼은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은 올해를 ‘고객(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시기라고 연초에 일제히 진단했다. 고객 신뢰를 이끌어내야 증시에 돈이 들어오고 활력이 생기고 지수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는 감이 없지 않다. 한 대형 증권사는 신뢰 회복을 위해 직원 평가와 성과급 지급을 고객 수익률과 연동시키는 방안을 실시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딱 그 정도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화 같은 시도를 폄하하는 분위기다.주 사장과 호형호제하는 다른 증권사 임원 얘기도 의미심장하다. 이 사람이 최근 사석에서 주 사장에게 “형, 그런다고 되겠어요?”라고 선문답 비슷하게 했다. 한화의 시도가 증시와 업계에 얼마나 선순환(善循環)을 일으키겠느냐는 얘기다. 주 사장은 “그렇게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으니 업계가 이 모양이지”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중견 증권사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바람을 대형사들이 외면해서야 업계 리더로서 자격이 있을까 싶다.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