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린 목민심서 영문 번역…'고전 한류' 일으키겠다"

'한국고전 세계화'…대학 첫 한국고전번역센터 최병현 센터장

지난달 고려대에 설치
"세계화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
2002년 '징비록'이 첫 번역작품
북학의·고려사·지봉유설 등 '산적'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10년 동안 영문으로 번역해 1170쪽에 달하는 책을 낸 학자가 있다. 최병현 호남대 교수(64·사진)다. 최 교수는 지난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설치된 한국고전번역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게 됐다. 이달 초에는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을 번역해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를 통해 내놨다. 1048쪽에 이르는 이 책 번역에는 4년이 걸렸다. 최 교수는 11일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고전 번역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가 고전 번역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건 1997년 미 메릴랜드대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다. “한국 문학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도대체 제대로 된 영문 책이 하나도 없었어요.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영문학 공부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문학을 외국에 알리지 못하는, 영문학을 위한 영문학은 별 의미가 없는 허학(虛學)입니다.”그가 처음으로 번역해 내놓은 히트작은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이다. 임진왜란의 자초지종을 기록한 것으로 미국 UC버클리대에서 2002년 출간된 이래 각국 대학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 중요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목민심서는 캘리포니아대를 통해 출간했다. 미국 유명 대학을 통해 책을 펴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하면 아프리카 구석까지 책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최 교수는 현재 센터 내 연구위원 5명과 함께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를 한창 번역하고 있다. 북학의를 내년께 출간하고 나면 ‘고려사’ 번역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는 어느 정도 외국에 알려진 감이 있지만 유독 고려시대는 안개에 싸여 있다”며 “마치 또 하나의 팔만대장경 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대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격인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지봉유설 같은 책을 번역하려면 천문학자, 국문학자, 영문학자, 한문학자, 식물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이 모여 오케스트라처럼 번역을 하다보면 우리 인문학의 수준이 높아지고 민족문화의 세계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겁니다.”

그는 진정한 한류의 조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중문화는 결코 한국을 대표할 수 없는 반쪽짜리입니다. 대중문화는 인기와 이익을 좇지요. 그러나 고전문화는 우리의 참다운 정신세계와 품격을 알립니다. 고전 한류가 함께 불어야 한국의 진면목을 외국에 제대로 알릴 수 있습니다.”최 교수는 미 컬럼비아대와 뉴욕시립대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를 딴 뒤 1993년부터 호남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시와 소설이 혼재된 시설 ‘냉귀지’로 1회 현진건문학상을 받았으며 징비록으로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그는 “아르키메데스는 적당한 지렛대가 주어진다면 지구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며 “고전번역센터에 많은 분들이 성원이라는 지렛대를 쥐어준다면 시대적 소명인 고전 번역으로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들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