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나님의 시련'은…故 함석헌 말이다

"폭로·비난 일색 공직자 언론 검증
그릇된 정보도 주워담을 수 없어
국회 안에서 정치하게 이뤄져야"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무척 거세다. 하긴 누가 후보자로 지명되더라도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형국이다. 속세에서도 가장 속된 정치계와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직책인데, 모두들 성인군자를 찾는다. 우리 사회에 총리를 할 만한 사람들이 드물지 않지만, 그런 행태 때문에 거의 다 고사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잘 알면서도, 여전히 그런 행태를 보인다. 파렴치범으로 확정돼 감옥에 갔다 온 정치인들이 비난에 앞장서는 비참한 소극도 으레 나온다.

문 후보자에 대한 비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책임 총리’ 발언이다. 기자들에게 “책임총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라는 물음을 받자 그는 “책임총리, 그런 것은 저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답했다고 한다. 트집을 잡으려는 기자들이 던진 물음에 대한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가장 적절한 대답은 바로 그가 한 말이다. “책임총리는 법에서 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며, 임명되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그의 부연이 그 점을 확인해 준다. 헌법의 존중과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에 대한 예의와 자신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 담긴 모범 답안이다. 그런 답변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병폐 하나를 아프게 보여준다.문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비난도 있다. 언뜻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얘기다. 그러나 찬찬히 맥락을 살피면 우리 역사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것임이 드러난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우리 역사를 살핀 분은 함석헌 선생인데, 실제로 문 후보자의 발언은 함 선생의 역사 해석과 맥락이 같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함 선생은 중학생들에게 ‘영광스러운 조국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우리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함 선생이 던진 물음은 ‘왜 우리는 그렇게 고난을 겪었을까?’였고 고뇌 끝에 찾은 답은 ‘섭리’였다. 우리 역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기독교 신자에겐 당연한 이 답을 찾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고, 함 선생처럼 위대한 사상가에 의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었다.

“나를 건진 것은 믿음이었다. 이 고난이야말로 한국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역사를 뒤집고 그 뒷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그야말로 가시 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이보다 힘찬 역사 해석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세계의 각 민족이 다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선물이 있는데 우리는 있는 게 가난과 고난밖에 없구나”라는 처절하도록 정직한 인식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그 힘참이 더욱 두드러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함 선생과 문 후보가 같은 세계관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한 것은 자연스럽다. 문 후보자가 함 선생의 명저를 읽고 감화받았을 가능성도 물론 크다. 문 후보자가 자신의 발언을 교회 안에서 한 얘기라고 설명했으므로, 그것으로 논란을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리 후보자는 국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일방적 폭로와 비난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인 언론의 ‘사전 검증’은 신중해야 한다. 한번 생산된 정보는 그르다는 것이 판명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영속적으로 유포되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