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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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베네치아인들의 또 다른 특성은 개방성과 수용성이었다. 베네치아는 서구 문화와 동방 문화를 잇는 해상 거점 도시다. 그들은 동방 문화와 서구 문화를 균형 있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를 낳았다.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거리나 산마르코 광장의 여유가 대표적이다. 고딕양식과 이슬람양식, 비잔틴양식도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베네치아인들의 이런 저력은 베네치아를 세계적인 부의 도시로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15세기 들어 인구가 10만명 정도였지만 주위를 포함하면 베네치아 제국의 인구는 150만명에 달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베네치아의 10배나 됐지만 수입은 베네치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다. 자본주의의 원조라고 얘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무엇보다 부가 집중되고 독특한 문화를 향유하는 데는 정치적인 안정이 있었다. 이들은 일찌감치 공화정을 채택해 7세기부터 투표를 통해 국가 지도자인 도제(doge)를 선출했다. 하지만 도제의 권한은 유명무실했다. 중요한 결정은 국회 격인 대의회가 도맡았다. 대의회는 많은 경우 1500명 정도의 시민들로 구성됐다. 물론 원로원도 존재했다. 도제와 원로원 등을 결합하는 베네치아 나름의 정치 구조를 가졌다. 일인 지배와 소수 다수지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절묘함을 선택한 것이다.
조르조 오르소니 베네치아 시장이 거액 뇌물 스캔들에 휩싸여 사임했다는 소식이다. 베네치아에 홍수 방지용 수문 설비를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인 ‘모세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다. 실질과 투명성, 자유와 개방을 외쳐왔던 베네치아인들로선 수치다. 하지만 최근 독립국가를 주장해왔던 베네치아다. 무언가 정치적 음모의 냄새도 풍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