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복연구가 박술녀, '한국의 멋'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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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유일하게 컨설팅 안하고 살아남은 한복집"
박술녀(59·사진) 한복집에는 특별함이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옥에 방문했을 때, 쉴새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매장으로,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직접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한복인생 30년 고집이 묻어있다. "제가 전화를 받으면 사람들이 놀라요. 청담동에서 이런 한복집을 운영하면서, 이정도는 당연한 수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매장으로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 저를 찾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화는 물론 항상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죠. 제 이름으로 만든 한복을 찾아주시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아닐까요."
짧은 시간이였지만,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대하는 그녀의 꼼꼼함 앞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객맞이부터, 한복의 색감을 맞추고, 패션쇼 기획·섭외까지 뭐하나 놓치는 일이 없다.
"바빠도 이정도는 할 수 있어요. 우리 매장은 전화 받아주는 사람만 없는 게 아니예요. 전 운전기사도 없고, 홍보팀도 없어요. 그 흔한 컨설턴트가 한 명도 없죠. 강남에서 유일하게 컨설팅 안하고 살아남은 한복집이예요." "30년 동안 별을 보고 출근, 별을 보며 퇴근"
박술녀에게 일 욕심은 삶의 즐거움이다. 운동을 매일 3시간씩 하는 이유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녀가 10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을 때, 걱정보다 자신이 아파 원단이 버려질 생각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충남 서천의 7남매 중 셋째 딸인 박술녀가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 이런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바느질로 헌 옷을 깁는 일, 간단한 옷을 만드는 일 등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하지만 집안 형편상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동생들을 위해 천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26살에 상경해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에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남들보다 2~3배 일을 했다.
문하생 중 단연 돋보였던 그녀는 5년 만에 강북 군자동에 33m² 남짓한 한복집을 내면서 독립한다. 11년 뒤 , 조그만 동네의 한복집은 496m² 규모의 청담동 한복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4층 1천157m² 규모의 사옥을 사들이며 명품 한복연구가로 우뚝섰다.한복을 한 벌 완성하기까지 보름에서 20일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고리 만드는 사람, 치마 만드는 사람 식으로 파트가 분업화되어 하루 한 벌을 만든다. 하지만 한복 시장이 대여 위주로 바뀌면서 그녀의 고민이 시작됐다.
"바쁠 때는 서너벌 나갈 때도 있고, 고무신 한 짝만 파는 날도 있죠. 3~4일 동안 한 벌도 못 파는 때도 있고요. 생각해보세요. 1년에 한복을 몇 벌이나 맞춰 입고 또 입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전세계에 알리는 '한국의 멋'
18일 대한민국의 2014 브라질월드컵 첫 경기인 러시아전이 시작되기 전, '무한도전' 응원단은 단장인 유재석을 비롯해 배우 손예진, 정일우, 바로(B1A4), 리지, 개그맨 지상렬, 박명수, 하하 등이 무대에 올라 응원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그들이 입고 온 것은 박술녀가 직접 제작한 응원복이다. 태극기와 붉은악마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한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미를 더한 의상은 '한국의 멋'을 알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매년 수차례의 패션쇼를 통해 한국 전통의상의 아름다움을 전도하고 있다. 또한 '추노' 같은 사극은 물론 '넝쿨째 굴러온 당신' 현대극까지 각종 TV 드라마에 협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독한 작업이지만, 한복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중화에 한 몫한다는 생각만으로 임하고 있다.
"특집 방송이나 사극 협찬용으로 만든 한복만 3천 벌이 넘어요. 사이즈도 제각각이니 쉽지 않은 일이죠. 한복이 예쁘다는 외국인은 많지만, 그들이 지갑을 열지는 않아요. 최근엔 미국 하버드대학원생들이 소문을 듣고 저를 찾아왔는데, 그들에겐 일종의 체험일 뿐이죠. 결국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한복을 입어야 우리 옷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답니다." 박술녀 한복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한복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있다. 한복을 고집한 지 30년, 인생의 절반을 한 가지 일에 쏟아 부었지만 처음 한복을 배울 당시를 기억하며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인생의 좌우명을 되새긴다.
글 = 김현진 기자 sjhjso1234@hankyung.com / 사진 =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
박술녀(59·사진) 한복집에는 특별함이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옥에 방문했을 때, 쉴새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매장으로,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직접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한복인생 30년 고집이 묻어있다. "제가 전화를 받으면 사람들이 놀라요. 청담동에서 이런 한복집을 운영하면서, 이정도는 당연한 수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매장으로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 저를 찾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화는 물론 항상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죠. 제 이름으로 만든 한복을 찾아주시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아닐까요."
짧은 시간이였지만,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대하는 그녀의 꼼꼼함 앞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객맞이부터, 한복의 색감을 맞추고, 패션쇼 기획·섭외까지 뭐하나 놓치는 일이 없다.
"바빠도 이정도는 할 수 있어요. 우리 매장은 전화 받아주는 사람만 없는 게 아니예요. 전 운전기사도 없고, 홍보팀도 없어요. 그 흔한 컨설턴트가 한 명도 없죠. 강남에서 유일하게 컨설팅 안하고 살아남은 한복집이예요." "30년 동안 별을 보고 출근, 별을 보며 퇴근"
박술녀에게 일 욕심은 삶의 즐거움이다. 운동을 매일 3시간씩 하는 이유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녀가 10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을 때, 걱정보다 자신이 아파 원단이 버려질 생각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충남 서천의 7남매 중 셋째 딸인 박술녀가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 이런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바느질로 헌 옷을 깁는 일, 간단한 옷을 만드는 일 등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하지만 집안 형편상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동생들을 위해 천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26살에 상경해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에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남들보다 2~3배 일을 했다.
문하생 중 단연 돋보였던 그녀는 5년 만에 강북 군자동에 33m² 남짓한 한복집을 내면서 독립한다. 11년 뒤 , 조그만 동네의 한복집은 496m² 규모의 청담동 한복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4층 1천157m² 규모의 사옥을 사들이며 명품 한복연구가로 우뚝섰다.한복을 한 벌 완성하기까지 보름에서 20일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고리 만드는 사람, 치마 만드는 사람 식으로 파트가 분업화되어 하루 한 벌을 만든다. 하지만 한복 시장이 대여 위주로 바뀌면서 그녀의 고민이 시작됐다.
"바쁠 때는 서너벌 나갈 때도 있고, 고무신 한 짝만 파는 날도 있죠. 3~4일 동안 한 벌도 못 파는 때도 있고요. 생각해보세요. 1년에 한복을 몇 벌이나 맞춰 입고 또 입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전세계에 알리는 '한국의 멋'
18일 대한민국의 2014 브라질월드컵 첫 경기인 러시아전이 시작되기 전, '무한도전' 응원단은 단장인 유재석을 비롯해 배우 손예진, 정일우, 바로(B1A4), 리지, 개그맨 지상렬, 박명수, 하하 등이 무대에 올라 응원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그들이 입고 온 것은 박술녀가 직접 제작한 응원복이다. 태극기와 붉은악마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한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미를 더한 의상은 '한국의 멋'을 알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매년 수차례의 패션쇼를 통해 한국 전통의상의 아름다움을 전도하고 있다. 또한 '추노' 같은 사극은 물론 '넝쿨째 굴러온 당신' 현대극까지 각종 TV 드라마에 협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독한 작업이지만, 한복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중화에 한 몫한다는 생각만으로 임하고 있다.
"특집 방송이나 사극 협찬용으로 만든 한복만 3천 벌이 넘어요. 사이즈도 제각각이니 쉽지 않은 일이죠. 한복이 예쁘다는 외국인은 많지만, 그들이 지갑을 열지는 않아요. 최근엔 미국 하버드대학원생들이 소문을 듣고 저를 찾아왔는데, 그들에겐 일종의 체험일 뿐이죠. 결국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한복을 입어야 우리 옷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답니다." 박술녀 한복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한복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있다. 한복을 고집한 지 30년, 인생의 절반을 한 가지 일에 쏟아 부었지만 처음 한복을 배울 당시를 기억하며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인생의 좌우명을 되새긴다.
글 = 김현진 기자 sjhjso1234@hankyung.com / 사진 =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