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쌀은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이다. 옥수수는 주로 사료용으로 쓰여, 실제론 쌀과 밀이 식량 공급을 양분하는 셈이다. 벼농사는 1만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원은 중국 윈난, 인도 북부 아삼, 동남아 등 설이 분분하다. 한반도에는 약 4000년 전 유입됐다.

세계 5대주에서 쌀을 재배하고 먹는다. 쌀이 서양에 전해진 것은 실크로드의 아랍인에 의해서다. 볶은 쌀에 육수를 넣어 조리하는 필라프는 타슈켄트가 발상지다. 쌀이 들어가는 스페인 남부 향토요리 파에야는 이슬람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사토 요우이치로, ‘쌀의 세계사’)쌀의 학명은 라틴어 ‘오리자(Oryza)’다. 오리자가 이탈리아에서 ‘riso’가 됐고,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소토(risotto)도 여기서 나왔다. 영국으로 건너가선 ‘rys’로 변했다가 오늘날 영어 ‘rice’가 됐다. 우리말의 쌀은 고대 인도어 ‘sari’가 어원이다. 쌀이 살(肉)에서 왔고, 식물의 살(쌀)과 동물의 살(고기)을 먹고 사는 게 ‘살암(사람)’이란 속설도 있다.

벼속(屬)에는 20여종이 있지만 대개 야생종이다. 재배하는 것은 흔히 안남미로 불리는 인디카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두 종이다. 인디카는 길고 끈기가 없는 장립종이고, 자포니카는 짧고 끈기가 있는 중·단립종이다. 세계 생산·소비량의 90%가 인디카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동북3성,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만 재배된다.

찹쌀은 멥쌀에 비해 열성으로, 전분당인 아밀로스가 전혀 없는 쌀이다. 아밀로스가 적을수록 밥이 차지게 된다. 요즘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흑미는 껍질(왕겨)만 벗겨내 현미 상태로 먹는데, 씨눈이 살아있어 백미보다 영양이 우수하다. 쌀의 왕겨만 제거하면 현미, 현미의 외피까지 제거하면 도정한 백미가 된다. 9분도미는 외피의 90%를 제거한 쌀이다. 요즘 마트에선 현미를 바로 도정해 준다.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에게 쌀은 주식(主食) 이상의 존재다. 동남아에선 쌀에 영혼이 있다는 도령(稻靈) 관념까지 있다. 하지만 소득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쌀 소비는 30여년 만에 반토막 났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0년 132.4㎏에서 작년 67.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쌀개방을 늦춘 대가로 올해에만 41만t을 수입해야 한다. 쌀값이 떨어져 큰일이라면서 해마다 남든 말든 의무 수입하는 구조다. 우리보다 1인당 쌀소비가 적은 일본 대만은 진작에 쌀 관세화로 전환했다. 정부가 조만간 단안을 내린다니 지켜봐야겠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