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주 150년…고려인 동포 방문단'모국에서 첫 밤'…"자랑스런 할아버지의 조국, 아들과 함께 왔죠"

극동지역 150명 역대 최대 규모
"고려인들은 독립군의 후예"
20일부터 광주·평창 등 전국 순례
< 국회 환영식 > 정의화 국회의장(가운데)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19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러시아 이주 150주년 독립투사 후예 고려인 동포 모국방문 국회 환영식’에서 쇼루코프 알렉산드르(여섯 번째) 등 고려인 대표에게 꽃다발을 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할머니께서도 한국을 무척 오고 싶어했지만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하셨어요. 이번 행사가 정말 좋은 기회라 큰아들과 함께 왔습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19일 만난 고려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42)는 한국 방문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역대 최대 규모의 고려인 동포 모국 방문 행사가 시작됐다. 옛 조선인들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고려인 동포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고려인돕기운동본부와 고려인문화농업교류협력회가 이날부터 오는 29일까지 10박11일 일정으로 마련한 행사다.

본부와 협력회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연해주)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와 독립유공자 후손 150여명을 초청했다. 알렉산드르는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외증손자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등을 지원했다. 독립유공자 박밀양 선생의 조카인 김리마 옹(80)도 “그동안 시간이 없어 한국에 오지 못했다”며 “생각보다 정말 좋은 느낌”이라고 모국 방문의 소감을 밝혔다.

고려인들은 1930년부터 1937년까지 옛 소련에 의해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민족을 말한다. 19세기 중반부터 연해주로, 또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한국인이란 의미에서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러시아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등에 현재 55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이광길 고려인돕기운동본부 회장은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자랑스러운 독립군 후손들이 바로 고려인”이라고 말했다. 또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뒤 극장 수위로 일하다 쓸쓸히 삶을 마감하고 그 후손들은 조국을 방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며 행사를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18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이날 강원 동해항에 도착한 이들은 국회로 이동해 환영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완구 새누리당·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과 만나 그간의 애환과 한국을 찾은 소감을 말했다. 저녁에는 서울 올림픽공원 파크텔에서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주최하는 만찬을 함께했다.

첫날 일정을 소화한 고려인 동포들은 20일부터 전국 곳곳을 둘러볼 예정이다. 20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뒤 23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고려인마을에 사는 ‘또 하나의’ 고려인 동포들을 만난다. 24일에는 서울시청에서 한국 전통가무 공연을 관람하고 안중근 기념관을 찾는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 메인 경기장을 둘러보고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뒤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본부는 2007, 2008년에도 각각 러시아 연해주 동포 100여명을 초청해 모국 방문 행사를 진행했다. 본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신청자가 워낙 많아 초청 대상자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지난 두 차례 방문단에 끼지 못했던 하바롭스크 거주 동포가 많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l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