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기업 회계감사인 강제지정 확대 바람직한가

정부가 기업에 외부 회계감사인을 강제로 정해주는 ‘감사인 지정제도’가 재계와 회계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감사인 지정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기업은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지만 상장을 앞둔 기업이나 관리종목 기업, 분식회계가 적발된 기업 등은 예외적으로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한다. 앞으론 이 대상을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기업, 우회상장 기업,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해주는 기업까지 넓히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아예 상장법인 전체에 감사인을 지정하자는 파격적인 내용의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회계업계는 감사인 지정제가 확대되면 회계사들이 ‘자본시장 파수꾼’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회계법인들이 경쟁하지 않으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광윤 아주대 경영대학 교수가 찬성론을, 이승렬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조사본부장이 반대론을 펼쳤다.찬성 독립성 높아져 소신 감사…‘자본시장 파수꾼’ 역할 가능

감사시장 갑을관계 개선…회계 투명성 확보

회계감사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기업의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따라 제대로 작성됐는지 인증해 투자자와 채권자를 보호하고 자본시장이 건전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 누구나 감사보고서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공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감사수수료는 기업이 부담한다. 여기서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기업 재무제표는 최고경영자(CEO)의 성적표로, 경영자라면 심리적으로 성적표를 잘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업들이 외부 감사인을 선임할 때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유선임을 하고 있다. 감사인을 선임하고 감사보수를 지급하는 피감사 기업이 ‘갑’이고 감사계약을 수임하는 감사인이 ‘을’이다. 1982년까지는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사인을 배정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경쟁을 통한 감사 품질 제고라는 명분으로 1983년부터 자유선임제로 바뀌었다. 예외적으로 분식회계 적발 기업과 상장 예정 기업 등에 지정제가 일부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 특성상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상법상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선진국처럼 감사위원회나 감사인선임위원회 등의 내부감시기구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선임제로 바뀐 이후 30년간 감사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는 이유다.외부감사가 공공재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선 ‘갑을’ 관계를 바꿔줘야 한다. 감사인은 무엇보다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감사인의 독립성은 감사인들이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소신대로 감사 의견을 밝히는 것을 뜻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감사인 지정제 확대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감사인 배정제 시절엔 감사기간 중에 피감 기업의 감사자료 제출이 지연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갑을 관계가 고착된 지금은 기업이 감사를 방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럴 경우 공인회계사들은 적정의견이 아닌 한정 등 다른 의견을 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수임한 거래처를 잃을까봐 소신껏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불완전한 상태에서 적정의견을 내게 되고 결국 감사의 품질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는다. ‘갑’인 피감 기업은 낮은 감사비용을 원하고 ‘을’인 회계법인은 일감 확보를 위해 감사보수를 스스로 전년보다 ‘덤핑’하며 부실 감사 가능성을 높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자유선임제의 부작용이다.

기업에선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면 감사보수가 대폭 올라간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공인회계사회-상장회사협의회가 함께 참여하는 조정기구를 만들어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감사보수 기준을 만드는 것을 담합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공재의 경우 담합 금지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내년 중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기업,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 등에 자유선임 예외를 확대하는 방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또 모든 상장사와 금융사에 대해 정부가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는 ‘상장법인 지정제’를 담은 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것만으로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완전히 회복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사까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전면 지정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기 위해선 글로벌 사회에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국가경쟁력 개선은 요원하다.

반대 경쟁 없어 감사인 전문성 저하…美·日 등 해외서도 시행 안해

회계사들 전문영역 개척에도 도움 안돼

외부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 방안에 대해 기업들은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강제 지정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자유선임제도 아래서는 외부 감사인의 독립적인 감사가 어렵고 저가수임 경쟁에 치중하기 때문에 감사인 지정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급속히 변화되고 있는 회계 환경 및 감사인 지정제도와 자유선임제도의 본질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없이 제기되는 단편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서는 글로벌 회계법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강제로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가 존재하는지 조사해봤으나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정책당국은 회계관련 제반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왔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감사인 지정제 확대는 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사인 지정제가 확대되면 감사 품질이 하향 평준화될 것이란 우려도 많다. 감사인이 피감 회사에 대해 이해와 경험을 축적하면 전문성이 높아지고 감사 품질이 향상될 수 있는데,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하면서 교체할 경우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회계법인이 감사팀을 훈련시키고 특정 업종에 특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EY는 미국 공개기업 회계감독위원회(PCAOB)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감사인을 강제로 교체하면 회계사들이 특화된 업종과 전문영역을 개척하며 높은 품질의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며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될 경우 감사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기업들은 정부가 감사인을 강제 지정하면 회사 차원에서 회계리스크를 통제하기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기업들은 다양한 회계 데이터베이스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는 대형 회계법인과의 감사계약 체결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해주게 되면 기업이 감사인을 예측할 수 없게 되고 전문성 있는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 회계감사원(GAO)에서 나온 ‘감사인 강제교체제도에 대한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자유선임제도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자유선임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진국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선임제도가 감사인 지정제도에 비해 회계투명성 제고에 우월한 제도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자유선임에 따른 외부 감사인의 독립성 훼손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을까.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주요 국가는 감사인 선임 과정에서 감사위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일정 기한 후 감사인을 교체하는 제도와 감사인의 비감사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도 보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한국도 이미 회계법인 담당이사(파트너) 강제교체제도와 감사인 선임위원회제도, 전임 감사인의 의견 진술권, 변경 동의권 등 자유선임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진국 수준의 다양한 대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감사인 강제 지정을 확대하기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는 이 같은 대체제도를 보다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판단된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