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大사이클 이론으로 본 '신흥국 증시 폭풍전야설'

IMF 등 신흥국 위기 잇달아 경고
'애프터 크라이시스' 극복 관심사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신흥국 증시가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 한국 증시도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가 ‘대안정기(great stabilization)’와 ‘대침체기(great recession)’를 반복함에 따라 이제는 정형화된 사실로 굳어졌다. 이 때문에 신흥국 증시가 대안정기 이후 찾아오는 대침체기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취임한 올 2월 이후 세계 증시는 재차 ‘대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대사이클론(論)은 갈수록 더 뚜렷해지고 있다. 2009년 2분기 이후 약 2년 동안 지속됐던 ‘1차 대안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최근 각종 공포지수가 안전지수라 불릴 만큼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의 위기의식이 급속히 사라지는 추세다.이 때문에 ‘2차 대안정기’ 이후 ‘2차 대침체기’가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경고가 위기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5월 이후 나타난 현상이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세계 증시는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폭풍전야설’을 경고했다.

길게 보면 최근과 같은 현상은 리먼사태 이후 세계경기와 증시가 롤러코스터에 비유될 만큼 기복이 심했던 추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리먼사태 직후 세계경기와 증시는 대침체기라 불릴 만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9년 2분기 이후 2011년 7월까지는 대안정기라 불릴 만한 회복기가 지속됐다.

리먼사태로 크게 동요가 일자 많은 전문가는 세계 경기와 증시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토록 빠른 속도로 큰 폭의 침체를 겪게 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경기와 증시가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그토록 빨리 회복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예측기관들은 예측하기보다 뒤늦게 수정하기에 바빴다. 이제는 예측 주기를 ‘연간 혹은 반기’에서 ‘분기’로 단축해 예측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 이 결과 경기나 주가 예측의 무용론이 제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예측기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1차 대안정기와 달리 2차 대안정기가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에 따라 세계적으로 돈(유동성)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로(0)금리’와 ‘양적완화(QE)’로 상징되는 선진국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은 이제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금리 예치제’까지 도입할 정도다.공포지수의 추락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특정 시점에 바뀔 때는 위험성과 변동성이 다시 확대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기와 증시는 대침체기가 다시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들어 불거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에 국제통화기금(IMF)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 극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대침체기가 오느냐는 ‘애프터 크라이시스(After Crisis)’ 문제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 위기국의 경험에 따르면 대안정기 이후 대침체기 여부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과 극복 정도에 따라 결정됐다.

미국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지속하면서 관심이 높아지는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브라운식 모델(1930년대 대공황 당시 추진됐던 루스벨트 방식)이다. 선진국들은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극복 대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지게 됐다. 이는 유럽에서 재정위기 형태로 가시화됐다.또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 충격이 덜했던 신흥국이 선진국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유입됐던 과다 유동성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작년 5월 말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출구전략을 언급한 이후 신흥국이 ‘테이퍼 텐트럼(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애프터 크라이시스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과 위기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면 많은 비용을 들여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다. 제2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회복 국면에 깊숙이 진입한 뒤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0년 전후 일본의 사례처럼 금융위기를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하면 세계 경기와 증시는 어느 순간 대침체기를 맞는다. 미국 학계와 월가를 중심으로 금리인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옐런 의장이 계속 금융완화 기조를 재천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