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마피아
입력
수정
지면A39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결속력 강한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마피아(Mafia)는 대문자로 쓴다. 반면 소문자로 마피아(mafia)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철학과 도덕, 감수성을 가리킨다. 즉, 과격한 반정부·반법률 감정이다. 여기엔 사라센, 노르만, 스페인, 프랑스 등의 지배와 착취에 시달린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공권력, 외세는 배격하되 가족과 친구는 설사 잘못해도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마피아가 등장한 밑바탕이다.
마피아는 시칠리아 말로 ‘자랑, 호언’ 또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827~1091년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사라센 말이 어원이라고 한다. 마피아의 유래는 19세기 부재 지주들의 사병조직(mafie)설이 유력하다. 두목은 ‘돈(Don)’이란 경칭으로 불리고, 혈연 지연 종교로 단단히 엮인다. 종교와도 같은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계율도 있다. 조직의 비밀을 발설하거나 경찰에 협조해선 안 된다. 시칠리아 속담에 “듣지도 보지도 않고 조용한 자만이 10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19세기부터 가난한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시칠리아인이 1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얼굴 흉터로 스카페이스란 별명을 얻었던 알 카포네도 그 중 하나다. 금주법은 미국 마피아의 전국적인 확장을 가져왔다. 1920년대 무솔리니 정권이 마피아를 뿌리 뽑으려 했지만 오히려 농촌에서 도시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됐다.
마피아 간 전쟁으로 무고한 시민까지 희생되자 80년대 이래 이탈리아 정부는 수시로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판사 조반니 팔코네, 검사 파울로 보르셀리노 등이 피살된 이후 더는 손을 못 대고 있다. 정권과 마피아가 기묘한 동거를 하는 셈이다. 마피아의 총매출은 이탈리아 GDP의 8%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탈리아에는 노사 코스트라(시칠리아), 카모라(나폴리),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풀리아), 은드랑게타(칼라브리아) 등 4대 마피아조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주말 은드랑게타의 본거지를 방문해 마피아를 악으로 규정하고 파문까지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은드랑게타(’Ndrangheta)는 이탈리아 남서부 칼라브리아주의 방언으로 ‘용기있는 남자’를 뜻한다. 그러나 하는 짓은 정반대다. 1970년대 몸값을 노린 납치가 잦아 ‘유괴 마피아’로도 불린다. 은드랑게타는 지난해 마약밀매, 고리대금, 도박, 매춘 등으로 78조원을 벌었다. 현대차의 자동차 판매액과 맞먹는다. 어느 정권도 못 한 마피아 척결을 교황이 할 수 있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