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부동산펀드 '1230억 취득세 폭탄'

부동산 매입후 등록 100여개
지자체, 稅 감면분 환수 나서

감면받은 세금 토해내면 수익률 '뚝'
투자자와 소송땐 운용사 문 닫을 판
▶마켓인사이트 6월22일 오후 5시45분

리치먼드 삼성SRA 등 30개 자산운용사가 조성한 100여개 부동산펀드에 1230억원의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업계가 관행적으로 해온 ‘선(先) 부동산 취득-후(後) 펀드 등록’에 대해 조세심판원이 “취득세 감면 대상이 아니다”고 판정해서다.▶본지 3월17일자 A5면 참조 (1)
▶본지 3월17일자 A5면 참조 (2)

조세심판원은 작년 8월 부동산펀드 명의로 경기 안성시 골프클럽Q햄튼 부지를 사들인 리치먼드자산운용에 대해 “감면받은 취득세 9억원을 내야 한다”고 최근 결정했다. 리치먼드는 작년 8월13일 해당 부지 매입계약을 맺고, 이튿날 부동산펀드 등록 신청을 했다. 리치먼드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취득세(4.6%)의 30%를 감면받았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부동산 취득 당시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펀드만 감면 대상’이란 해석을 내렸고, 안성시는 취득세 감면분 환수 조치에 나섰다.업계는 ‘펀드 등록과 부동산 취득의 선후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조세심판원에 취득세 감면분 환급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이 취득세 감면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안행부의 손을 들어주자 부동산펀드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이 앞다퉈 세금환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안성시뿐 아니라 대구시, 서울 관악구 등도 관내 부동산을 매입한 부동산펀드를 대상으로 세금 환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가 추정하는 취득세 감면분 환수 대상 펀드는 100개 안팎. 설정액 규모로 따지면 9조원으로 전체 부동산펀드 설정액(19조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들이 감면받은 세금은 1230억원에 이른다.
A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자체가 취득세 감면분 반환 요청을 하면 일단 세금을 낸 뒤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며 “세금 및 소송비용은 배당을 유보하거나 금융사 대출을 받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자산운용사들이 행정법원 및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경우 투자자들과의 ‘2차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기금, 보험사 등 부동산펀드에 목돈을 낸 ‘큰손’ 투자자들이 “운용사 잘못으로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낸 탓에 펀드 수익률이 떨어졌다”며 취득세 감면분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운용사가 책임지라는 소송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B운용사 관계자는 “한 대형 운용사는 토해내야 할 취득세가 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투자자와 소송에 휘말릴 경우 규모가 작은 운용사들은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조세심판원의 이번 결정이 그동안의 관행과 관련 부처의 해석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가 2011년 업계의 질의에 ‘펀드 등록 여부는 (해당 부동산이) 펀드 재산으로 인정받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린 것과 서울시가 이를 토대로 ‘부동산 취득 후 펀드를 등록해도 취득세 감면대상’이라고 서대문구에 회신했는데도 이를 인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 등록이 먼저냐, 부동산 취득이 먼저냐’는 행정 절차에 불과할 뿐이어서 취득세 감면 여부를 결정할 변수가 안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07년까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라 ‘사후등록제’였던 부동산펀드 등록방식은 2008년 자본시장법이 발효되면서 ‘사전등록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금융위는 지난 4월 ‘사후보고제’로 또다시 환원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수시로 법령을 바꾸는 것만 봐도 등록 시점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며 “‘세제혜택을 통한 부동산펀드 활성화’란 감면 취지를 무시한 채 단순 절차를 문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기열/오상헌 기자 philos@hankyung.com